모두 63구로 되어 있다.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여 지은 애도가사로 『전의이씨행록(全義李氏行錄)』에 사림(士林)의 보장(報狀)과 통문(通文:여러 사람의 이름을 적어 차례로 돌려보는 통지문) 및 이씨 부인이 지은 산문인 제문과 함께 실려 전한다.
작자인 이씨 부인은 23세 때 곽내용과 혼인하여 이듬해에 남편을 여의고 줄곧 슬픔에 잠겨 한스러운 나날을 보내다가, 마침내는 자진하면서 이 가사를 지어 남겼다.
규합가사(閨閤歌辭)로서는 비교적 초기에 지어진 것으로서, 그 뒤에 지어진 여류가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변용가사(變容歌辭)와 같은 정연한 귀글체의 율격 형식과는 달리 복합격구로 된 보다 자유로운 율격으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적이다. 그러나 결사는 척구(隻句)를 갖추고 있는 정격가사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내용은 낭군을 잃은 외롭고 가련한 신세가 되어 빨리 목숨을 끊고 죽음으로써 절개를 밝히는 것이 떳떳한 도리라 생각되나, 부모 앞에 목숨을 끊는 것은 또한 불효를 저지르는 것이 되므로 열(烈)과 효(孝)가 빚는 갈등 속에서 낭군과의 상봉을 환상적으로 그리다가 마침내는 죽음을 택하게 되는 가련한 정상(情狀)을 애소(哀訴)한 것이다.
깊은 정애(情愛)를 담은 지정적(至情的) 내용의 작품으로, 이 가사에 간직된 열효사상은 효열문학의 전범(典範)이 되었다. 당시의 사림은 이 애음(哀吟)을 효열의 표징이라 평하였고, 이 시를 읽고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지 아니하는 이는 인정이 아니라고 하였다.
또한, 시어(詩語)가 모두 경적(經籍:경서)에서 인유(引喩)되어 그의 달식(達識:뛰어난 견식)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고며, 시풍은 육체시(六體詩)를 깊이 터득한 데서 이루어진 것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