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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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무신 박성양의 유고와 행장·묘갈명 등을 수록하여 1948년에 간행한 실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민식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박성양의 금은실기 중 표지 미디어 정보

박성양의 금은실기 중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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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전기 무신 박성양의 유고와 행장·묘갈명 등을 수록하여 1948년에 간행한 실기.

내용

2권 1책. 석인본. 1948년에 그의 16대손 세환(世煥)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만규(李晩煃)의 서문과 권말에 권상규(權相圭), 후손 훈(薰) 등의 발문이 있다.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수에 태조의 어사시(御賜詩) 1수가 있고, 권1에 시 2수, 서(書) 2편, 증유시(贈遺詩) 2수, 척실(摭實) 6편과 부록으로 묘지명·유사·행장·묘갈명·제단지(祭壇誌)·신도비명(神道碑銘)·봉안문·상향축문(常享祝文)·연시고유문(延諡告由文)·중수기·명곡서당기(明谷書堂記)·축문·중건기, 권2는 부록으로서 상언초(上言草)·회계(回啓)·이조망기(吏曹望記)·교지·시장(諡狀)·예조회계(禮曹回啓)·시호(諡號)·시장안본(諡狀安本)·사림정본읍단자(士林呈本邑單子)·청시각서원통문(請諡各書院通文)·선시운(宣諡韻)·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박성양의 유문은 시 2수와 서(書) 2편뿐이다. 시 가운데 「만고실정부인정씨(輓故室正夫人鄭氏)」는 그의 부인이 죽었을 때 쓴 만시로, 영구를 떠나보내는 애절한 정한을 나타낸 것이고, 「소남감회(韶南感懷)」는 칠언절구 3수로 되어 있는데, 모두 운치와 격조가 높고 서정성이 두드러진다. 그의 시는 조선 전기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으며 시사 연구에도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서(書) 가운데 「답허경암(答許敬菴)」은 허조(許稠)가 자기의 손자를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해오자 이에 대해 겸양하는 말로 답한 것이다. 증유시 2수는 모두 유방선(柳方善)의 시로, 남쪽의 왜구를 무찌른 박성양의 개선을 축하해 지어준 것과 남곤(南閫)으로 부임할 때 지어준 것이다.

척실에는 『국조실록(國朝實錄)』에서 초록한 것, 김종직(金宗直)의 『이존록(彝尊錄)』에서 발췌한 것, 우리나라 이학(理學)의 계통을 설명한 「토헌선생논이학통론서(土軒先生論理學統論書)」, 서거정(徐居正)의 『필원잡기(筆苑雜記)』 등이 있다. 교지나 시장 등은 1868년(고종 5)에 내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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