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훈지(壎之), 호는 면진재(勉進齋). 아버지는 훈도(訓導) 금재(琴梓)이며, 어머니는 김효로(金孝盧)의 딸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며, 유성룡(柳成龍)·조목(趙穆)과 교우하였다.
1570년(선조 3) 사마시에 합격, 1594년 학행에 의하여 좌찬성 정탁(鄭琢) 등의 천거를 받아 종묘서부봉사(宗廟署副奉事)에 제수되었다.
그 뒤 영춘현감과 제천현감 등을 역임하고 1600년 의흥현감에 제수되었으나, 유성룡과 조목의 요청에 따라 사직하고 『퇴계선생문집(退溪先生文集)』 간행실무자로 참여하였다. 외관시에는 선정으로 명망이 높았고, 퇴관해서는 후진교육에 전력해 큰 성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