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계림로 보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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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계림로 보검
경주 계림로 보검
공예
유물
국가유산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서 발견된 칼.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경주 계림로 보검(慶州 鷄林路 寶劍)
분류
유물/생활공예/금속공예/장신구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78년 12월 07일 지정)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경주 계림로 보검은 경상북도 경주시 미추왕릉 지구에서 발견된 칼이다. 197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발견 당시 철제 검신과 목제 칼집은 썩어 거의 없어졌다. 칼자루 머리·칼자루·칼집 세 부분의 칼집 장식들만 남아 있다. 전체 길이가 36cm 단검인데 화려한 장식이 표면에 베풀어진 이국적인 작품이다. 표면은 금판이고 장식의 중간과 외곽에 금알갱이를 붙여 화려함을 더했다. 이 보검은 장식이 동유럽과 서역에 분포되었던 고대 보검과 유사한 표현 형식이다. 신라와 중앙아시아의 문화 교류와 신라 문화의 국제적인 성격을 증명하는 귀중한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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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서 발견된 칼.
개설

197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973년 당시의 경주 시가지 중심부에 자리한 고분공원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발굴조사가 진행되었고 계림로에 위치한 고분군은 봉토의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 작은 규모의 무덤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가운데 14호묘는 길이 3.5m, 너비 1.2m 크기에 불과한 작은 무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크기의 왕릉급 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는 화려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내용

이 무덤의 출토품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유물이 피장자의 허리춤에서 출토된 장식 보검(寶劍)이었다. 전체 길이가 36㎝에 불과한 단검이지만 화려한 장식이 표면에 베풀어져 있어 한눈에 보아도 상당히 이국적인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발견 당시 철제 단검인 검신(劍身)과 목제의 칼집은 썩어 거의 없어지고 칼자루 머리 · 칼자루 · 칼집 등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칼집 장식들만이 남아 있었다.

손잡이 끝은 반원형이고 손잡이 장식이 세로로 가늘고 긴 형태로서 칼집 입구의 장식은 옆으로 길죽한 장방형과 그 아래쪽에 받침모양의 장식이 부가되어 있었다.

표면에는 금판으로 만든 외곽 안으로 S자형, 네모형, 사다리꼴, 나뭇잎, 바람개비 등의 다양한 형태의 작은 구획들로 나뉘어져, 그 속에 둥근 형태, 나뭇잎형, 콤마형과 인동무늬의 홍마노(紅瑪瑙) 구슬을 끼워 넣었다. 장식의 중간과 외곽에 금알갱이를 붙여 넣어 화려함을 더하였다.

측면에는 벨트에 걸 수 있도록 2개의 돌출부를 만들었는데, 윗쪽의 장식은 P자 모양이고, 아랫쪽의 장식은 반원모양이다.

이 보검에 보이는 것과 같은 다채(多彩) 장식은 고대 그리스, 로마, 이집트, 서아시아 등지에서 널리 유행한 기법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훈(Hun)족의 아틸라 제국(434∼454)에서 5세기대에 성행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아울러 계림로 보검과 매우 유사한 의장을 지닌 칼(5세기경에 제작)이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외에도 이란, 아프카니스탄, 중앙아시아의 벽화에도 이 보검과 유사한 단검을 패용한 인물이 그려져 있는 것이 확인된다. 그 가운데 우즈베키스탄의 아프라시압 벽화에 보이는 사절도 가운데 이와 똑같은 장식 보검을 찬 인물이 표현되어, 이 보검이 당시 널리 사용된 형식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멀리 동유럽과 서역에 걸쳐 분포되었던 고대의 장식 보검이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신라의 수도인 경주의 작은 무덤에 매납된 것임이 주목된다.

따라서 이 보검은 당시 신라와 중앙아시아의 문화교류와 신라 문화의 국제적인 성격을 증명하는 매우 귀중한 유물임에 분명하다. 즉 당시에 중국의 북위(北魏)는 페르시아를 비롯한 주변의 많은 나라와 활발한 정치 · 경제적 관계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북위의 수도에는 늘 많은 외국인과 고구려와 신라의 조공 사절들이 자주 왕래하였다. 각국과 활발하게 문물을 교류했던 북위와 신라의 교류관계를 통해 이 보검이 신라로 흘러 들어왔던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문헌

『공예 Ⅰ-고분미술』(이한상, 예경, 2006)
『황금의 나라 신라』(이한상, 김영사, 2004)
『고분미술Ⅰ·Ⅱ』(이영훈·신광섭, 솔출판사, 2003)
『국립경주박물관 고고관』(국립경주박물관, 통천문화사, 2002)
『신라 황금 –신비한 황금의 나라』(국립경주박물관, 씨티파트너, 2001)
『한국 고대의 금속공예』(이난영,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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