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세 마리의 용이 입을 벌려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용의 눈과 뿔, 비늘 부분까지 생동감있게 표현되었다.
팔찌는 귀걸이와 함께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장신구이다. 삼국시대는 나라마다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어 백제의 경우 무녕왕릉 출토품처럼 여러 개의 봉을 고리로 이어서 만들었고 신라의 팔찌는 5세기대에 들어와서 표면에 뱀의 배처럼 새김눈[刻目]을 장식하는 것이 유행하였다. 이러한 신라의 팔찌는 고구려와 유사하며 표면에 새겨진 각목 장식은 가야의 팔찌에서도 보인다. 지금까지 확인된 신라의 팔찌 가운데 가장 연대가 앞서는 것은 황남대총 북분 출토의 금팔찌이다. 이 팔찌는 아무런 장식이 없이 속이 들어차거나 혹은 빈 금제 봉을 구부려 만든 가장 단순한 구조이다. 금관총과 서봉총의 금팔찌는 그 다음 시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속이 들어 찬 금제 봉을 구부려 만들었으나 표면에 치밀한 새김 눈 장식이 들어갔다. 6세기대 팔찌는 금령총 출토품처럼 표면 돌기를 이용하여 유리를 끼워 장식하거나 천마총 출토품처럼 돌기만 표현하였다. 마찬가지로 같은 6세기 대에 만들어진 노서동 215번지 출토 팔찌는 금판을 둥글게 말아 속이 비도록 만들었고 둥근 돌기를 장식하였지만 제작기법과 의장면에서 신라의 팔찌 중 가장 화려하다.
한쌍으로 이루어진 팔찌로서 지름 8.3㎝의 다소 큰 편에 속한다. 기본 형태는 천마총 팔찌와 같지만 표면 문양은 백제의 무령왕비(武寧王妃)가 착용하였던 ‘다리작명(多利作銘)’ 은팔찌와 마찬가지로 팔찌 옆면에 용을 도드라지게 장식한 점이 주목된다. 이 용의 모습은 다리작명 팔찌에 비해 가늘고 간략한 편이지만 세 마리의 용이 입을 벌려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용의 눈과 뿔, 비늘 부분까지 생동감있게 표현되었다. 외측면의 각목 문양은 굵고 동그랗게 묘사되어 마치 연주문처럼 보인다. 노서동 목걸이와 마찬가지로 화려함이 강조된 부인용 팔찌로 추정된다. 이같이 용이 조각된 팔찌는 이제까지 백제 다리가 제작한 팔찌를 비롯하여 노서동 팔찌와 출토지 미상의 팔찌, 단 세 점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노서동 팔찌의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