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조선 중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금헌(琴軒) 이장곤(李長坤)을 배향하고 있는 건물이다. 이장곤은 벽진이씨(碧珍李氏)의 18세손으로 김종직(金宗直), 정여창(鄭汝昌) 등과 친교가 있던 진사 이승언(李承彦)의 5형제 중 넷째 아들이다. 1502년(연산군 8)에 문과에 급제, 교리가 되고, 1507년 병조판서 · 우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1695년(숙종 21)에 이승언 · 성안의(成安義)와 같이 연암서원에 배향되었으나, 연암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시에 없어졌다.
금호재는 목조 기와집으로 팔작지붕에 5량구조를 한 이익공(二翼工)형식이며, 전체적으로는 ㅁ자형 배치를 하고 있다. 좌향은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하여[北座南向]있으며, 평면은 정면 4칸, 측면 2칸이다. 양측면의 방은 온돌방이고 중앙 2칸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으며 건물 목재의 대부분이 괴목으로 되어 있다.
축담돌은 화강암을 다듬어 일단으로 규격을 똑같이 하였고 정면 중심부에 디딤돌을 하나 놓고 축담 위에 2개를 설치하였다. 기둥은 모두 두리기둥을 사용하였고 처마는 홑처마이면서 유연하게 곡선을 주었다.
금호재는 1695년까지 존재했던 용흥사의 부속건물을 이곳으로 이건하여 이장곤의 재실로 삼은 것이라 한다. 가구구조가 용흥사 본래의 형식인 17세기 이전의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상량문은 1886년(고종 23)으로 되어 있다. 본채 정면의 대문 앞 양쪽에는 우진각 지붕을 한 2동의 관리사가 있는데, 1966년에 건축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