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1637년 인조가 청나라 태종 앞에 나가 항복하는 치욕적인 화의가 성립되자 척화파인 정온은 자결을 시도했으나 전의와 광주목사의 손에 구명된 후 이곳에 낙향하여 죽을 때까지 은거했던 곳을 기념하기 위해 유림들이 건립한 재사(齋舍)이다.
사당 본당인 모리재, 관리사인 서무, 대문인 화엽루, 그리고 유적비가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집으로 초익공계이고, 모리재는 정면 6칸, 측면 2칸 팔작지붕 소로수장집이며, 서무(관리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 민도리집, 사당내 삼문은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맞배지붕에 일주문이다. 그리고 협문도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 일주문이다.
재실의 규모로서는 대단히 크고 치목도 정교하며 남부형 민가의 형식을 띠고 있다. 좌측 전면 툇간은 수장 기능을 갖는 방이 놓이고, 상부에 다락을 두어 문집과 책판을 보관하는 곳이고, 그 뒷면에는 부엌을 두어 민가형 평면을 보이고 있다.
대문칸채인 화염루는 1806년에 건립되었고, 1921년에 중수하였으며, 정면 좌측 누하주는 화강석을 네모지게 하여 원형 목조기둥을 대신하였으며, 이익공계 건물로 화려하게 단청을 하였다.
대들보 위에는 양 툇간에서 중량을 걸어 용의 문양으로 단청을 하였으며 주간에는 화반을 두었다. 네 모서리 추녀에는 활주를 끼웠던 홈이 보이는데 현재 2개는 유실되고 2개는 팔각주 형태의 긴 초석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