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의 동편에는 고려시대 산성으로 알려져 있는 회원성지(경상남도 기념물, 1988년 지정)가 있고, 마산만과 접하는 동일한 노선상에 고분군과 산성이 있다.
1986년 2월 도로개설공사 중 파괴된 3기의 돌덧널무덤[石槨墓]에서 많은 토기가 출토됨으로써 알려져, 1986년 4월 창원대학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제1호 돌덧널무덤는 3기의 돌덧널무덤 중에서 가장 남쪽에 있으며, 일부 파손되었다. 돌덧널의 장축방향은 북동-남서이며 개석(蓋石)은 남아 있지 않다. 유구의 축조과정을 보면, 생토층(生土層)인 적갈색 석비레층을 파서 묘광(墓壙)을 만든 뒤, 할석(割石)으로 네 벽을 쌓았는데, 바닥쪽인 석벽의 아래편에는 비교적 큰돌로, 위편에는 작은 돌로 축조하였다. 돌덧널의 크기는 남아 있는 긴벽 180㎝, 짧은벽 56㎝, 깊이 110㎝ 정도이다. 출토유물은 파배(把杯)·뚜껑접시[蓋杯]·긴목항아리[長頸壺]·쇠살촉[鐵鏃] 등이 있다.
제2호 돌덧널무덤은 제1호 돌덧널무덤에서 북으로 약 30m 떨어져 있다. 돌덧널의 장축방향과 축조방식은 제1호 돌덧널무덤과 비슷하며, 개석 4매(枚)가 덮여 있으며, 파배·원저호(圓底壺)가 출토되었다. 제3호 돌덧널무덤은 가장 북쪽에 위치하며 파괴가 극심하다. 돌덧널의 장축방향은 남-북향이며, 파수부호(把手付壺)·개(蓋)·기대편(器臺片)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소형 구덩식 돌덧널무덤 중심의 분묘유적이며, 출토유물은 주로 토기류와 철기류만 매장된 비교적 단순한 부장양상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돌덧널무덤의 장축방향이 거의 남-북축인 것이 특이하다. 연대는 유구와 출토유물의 성격으로 미뤄볼 때, 5세기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