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생육신의 한 사람인 어계은자(漁溪隱者) 조려(趙旅)의 생가라고 전해지나, 이곳에서 출생하지 않았으므로 고택(故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조려는 단종이 양위하자 낙향하여 함안군 원북리의 서산에 집을 짓고 은거하였다는 것이다. 원래의 건물이 있었는데 시대 미상인 오래된 집을 헐고 일제 강점기에 다시 재건한 것이 현 건물이다.
상량문에 ‘中元 甲子九月二十日 竪柱 同月二十五日 乙亥 未時 上樑’이라 기록되어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동서 양칸은 온돌방으로 하고, 중앙 2칸은 대청마루이며, 앞열의 기둥은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一자형 평면에 팔작지붕을 한 기와집으로 처마는 홑처마이고 벽체는 자연석 돌을 쌓고 시멘트로 처리하였다. 마루 밑에는 5개의 자연석 돌로 기둥을 세워 마루를 받치고 있다.
정면 왼쪽에는 ‘院北齋 漁溪古宅’, 오른쪽에는 ‘琴隱道風’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대문은 6ㆍ25 이후에 건립한 것으로 솟을대문이며, ‘忠臣贈吏曹參判趙旅之閭’ㆍ‘肅宗癸未命旌 正宗辛丑 加贈吏曹判書 諡貞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 집 바로 뒤에는 서남으로 비스듬히 조묘(祧廟)가 있는데, 3칸 맞배지붕으로 좌우에 방풍판을 달았다. 마당은 자연석 돌을 깔고, 축담은 시멘트로 처리하였다. 담장은 돌담으로 돌렸다. 동편에 관리사가 있고, 서편에 종손의 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