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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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종교적 예능으로 부처를 공양하기 위한 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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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대의 종교적 예능으로 부처를 공양하기 위한 가무.
내용

고대의 종교적 예능으로 부처를 공양하기 위한 가무.

일본에서는 고전악무의 하나인 기가쿠(伎樂)를 의미한다. 부처를 공양하기 위한 가무로서 기악이라는 용어는 불교경전에도 자주 나오며, 고대 중국문헌과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는 기악도 일반명칭으로 쓰였다.

그러나 연극사에서 널리 쓰이는 기악이란 용어는 백제인 미마지(味摩之)가 남중국 오나라에서 배워 일본에 전해준 가무기악을 고유명사화한 것이다.

≪일본서기 日本書紀≫에 따르면 612년에 미마지가 기악을 전하였다고 하며, 그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기악은 일본고전무악으로서 가면만 전할 뿐 놀이로서는 전승되지 않았다.

기악의 내용은 13세기 중엽에 쓰여진 일본악서(日本樂書) ≪교훈초 敎訓抄≫ 속에 그 연행(演行)의 대략이 전해지지만, ≪교훈초≫의 기악은 전래 뒤 600여 년이 지난 뒤의 기록이므로 상당한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악가면은 7, 8세기의 것이 그대로 200여 면이나 일본에 남아 있어, 전래 당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내용은 ≪교훈초≫에 의하면 시시(獅子)·고코(吳公)·가루라(迦樓羅)·곤고(金剛)·바라몬(婆羅門)·곤론(崑崙)·고조(吳女)·리키시(力士)·다이코(太孤)·스이코(醉胡) 등이 등장하는 일종의 소극(笑劇)으로서 로마시대의 마임(mime)이나 판토미무스(pantomimus) 등에 견줄 수 있는 가면묵극(假面默劇)이다.

연희의 내용은 희극적이며 외설적인 것이었으리라 추측된다. 먼저 시시가 춤을 추는데, 이 시시는 시시지(獅子兒)라고 불리는 미소년이 이끈다.

다음은 고코가 부채를 들고 등장하여, 악사(樂師)를 향해 피리를 불거나 그치는 시늉을 하면 악사가 피리를 불거나 그친다. 다음은 가루라가 나와 빠른 반주음악에 맞춰 서조(瑞鳥)의 춤을 춘다.

다음에 곤고와 바라몬이 나와서 승려에 대한 희극적 연기를 하고 곤론은 고조를 사모하는 외설적인 춤을 춘다. 이어서 리키시가 등장하여 곤론을 항복시킨다. 다음에는 노녀(老女)차림의 다이코가 아들 둘을 데리고 허리를 밀고 무릎을 치게 하며 불전(佛前)에 예불한다. 끝으로 스이코가 등장하여 호인(胡人)의 술취한 모습을 흉내낸다.

≪교훈초≫의 기악은 여러 인물들이 전후의 연결없이 등장하는 것으로 서술되어 있으나, 본래의 기악은 출장(出場)하는 인물들이 몇 명씩 어울려 하나의 정경을 구성하며, 몇 개의 장면을 연출하는 가면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처음부터 가악무(歌樂舞)의 가(歌)나 사(詞)에 해당하는 것이 없었는지, 또는 일본에 전래될 당시나 후세에 탈락되었는지 알 수 없으며, 또한 미마지 전래 당시보다 600여 년 뒤에 기록된 ≪교훈초≫의 기록이 7, 8세기경의 기악의 모습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전하고 있는지도 일단 의문을 품게 만든다.

그리고 불교공양의 무악으로 일종의 불교선교극이라고 보아왔지만 이것이 처음부터 10과정(科程)의 조곡(組曲)으로 대륙으로부터 전래되었는지 또는 백제에서 통합되었는지 아니면 일본에서 통합되었는지도 의문이다.

이혜구(李惠求)는 <양주별산대 놀이>와 기악을 비교하여, 산대놀이와 기악이 같은 계통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산대놀이의 8목중과 기악의 가루라, 완보(完甫)와 곤고, 관(冠)쓴 중과 바라몬, 노장과 곤론, 취발이와 리키시, 신할아비와 다이코, 샌님과 스이코 등을 비교하였다. 산대놀이와 기악이 같은 계통이라는 주장은 아직도 찬반으로 나뉘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기에서 또하나의 문제가 되는 것은 기악의 발상지이다. 백제의 미마지가 남중국 오나라에서 기악을 배웠다는 기록을 생각할 때, 과연 오나라가 기악의 발상지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일본학자들은 기악의 발상지를 중앙아시아 등지로 보고 있으며, 독일학자 루카스는 서역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늘날 기악의 실체를 정확히 규명해낼 수는 없지만 대체로 서역에서 발생하여 극동으로 전해진 듯 하고, 백제로 들어와서도 사찰을 중심으로 하여 연희되었으며, 일본에 전해진 뒤에도 역시 사찰을 중심으로 하여 공연되면서 신도들의 신심(信心)을 북돋우는 불교극으로 내려오다가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한국음악연구』(이혜구, 국민음악연구회, 1957)
『한국의 가면극』(이두현, 일지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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