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민간에서 길을 가면서 부르던 노래를 통칭하여 「길군악」이라 하였다. 「길군악」은 ‘군악’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행악(行樂), 즉 취타 계열의 기악곡에서 온 말이다. 민요 「길군악」은 전문 가수들이 불러온 통속민요[창민요]와 농사나 무의식(巫儀式)을 위해 실제 길을 걸으면서 노래하는 향토민요[토속민요]로 나눌 수 있다. 「길소리」 · 「길타령」 · 「길노래」 · 「질가락」이라고도 한다.
통속민요 「길군악」은 서울 · 경기 지역의 삼현육각(三絃六角) 「길군악」에서 유래한 음악으로 짐작된다. 「길군악」, 「길타령」, 「사절가」[「사철가」], 「풍년가」 등의 이름으로 20세기 전반(前半) 음반과 악보에 수록되어 있는 노래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 노래들은 4박[12/8]의 굿거리장단으로 메기는소리와 받는소리가 동일한 선율로 이루어져 있다. 후렴은 “지화 지화 지화자 좋다” 혹은 “지야 지야”로 되어 있다. 서도 「길군악」은 라(La), 도(do), 레(re), 미(mi), 솔(sol)의 음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기 「길타령」은 솔(Sol), 라(la), 도(do), 레(re), 미(mi)로 약간 다르나 선율 윤곽[Melodic contour]은 같다. 경기 「길타령」에서 나온 「풍년가」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의 통속민요 「길군악」 역시 같은 계열의 소리로 보고 있다.
「사철가」[Victor KJ1061A 구재회 · 김능사, 1936]
(받) 지화 좋다 얼씨구나 좀도 좋으냐 명년 춘삼월에 화전놀이를 가자
(메)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네 금수강산으로 풍년이 왔네
(메) 올해도 풍년 내년에도 풍년 연년 바람이 풍년이로구나
농사를 지으러 들로 나가거나 집으로 돌아오면서 부르는 소리, 짐꾼들이 길을 가면서 부르는 소리, 풀이나 나무를 하며 오가는 소리 등이 모두 「길군악」이다. 그중에서도 음력 7월 ‘호미씻이’라 하여 마지막 논매기를 마치고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집의 일꾼을 농사장원(農事壯元)으로 뽑아 소에 태우고 돌아오면서 부르는 ‘장원질소리’가 소리 종류도 많고 지역마다 다양하게 불려 왔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전라남도 영광군, 무안군, 장성군, 함평군 등 전라남도 서북부 지역에서 부르는 장원질소리는 「애롱대롱」[「아롱자롱」]이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전라남도 담양군, 곡성군, 보성군 등지에서는 「산아지타령」을 많이 부른다. 경상남도 거창군,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전라남도 해남군, 신안군, 고흥군 등 가장 널리 분포되어 불리는 소리가 이른바 「질가락」, 「질꼬내기」, 「질꼬냉이」로 알려진 길노래다.
「애롱대롱」[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동당리]
(받) 에롱 대롱 지화자 좋네
(메) 풍년새 운다네 풍년새 울어
(메) 금년년도에 풍년새 울어
「산아지타령」[전라남도 곡성군 삼기면 원등리]
(받) 허 허허허이헤야 허어디여 산아지로고나
(메) 잘도나 허네 잘도나 허네 우리 농군들 잘도 허네
(메) 저 달은 뚝 떠서 대장이 되고 견우직녀 후분이로고나
「질꼬내기」[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
(받) 에헤헤야 헤헤야 얼시허 어허허얼사 지와자자 아허허얼시구나 지와자자자 얼사 좋네
(메) 오동에 추야 당도나 밝고 임의야 생각 허어 내가 절로만 나는구나야
(메) 뽕 따로 간다 뽕 따로 간다 뒷동산 성들로 내가 뽕따로 가는구나야
장원질소리는 힘겨운 노동에서 놓여난 상태에서 부르게 되므로 본질적으로 유흥적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여타 노동요와 달리 기층의 민요보다는 다른 집단의 노래나 흥겨운 노래를 전용(轉用)하여 부르는 경향이 있다. 영남 지역에서 마지막 논매고 오면서 부르는 「칭칭이소리」는 누구나 아는 경쾌한 소리로 춤추며 부르기 좋은 노래다. 호남의 장원질소리는 해당 지역의 육자배기조가 아닌 발랄한 경기민요조가 섞여 있는데 이는 유랑 예인 집단인 사당패 소리가 수용된 것이다. 강릉 지방에서 단오굿을 벌이기 위해 대관령 서낭님을 맞이하는 행렬에서 부르는 길노래 「영산홍」에도 사당패 소리의 특징이 보인다.
현재 진도의 「질꼬냉이」가 「모내기」와 「모심기」, 「논매기」 등의 노래와 함께 일련의 농요에 포함되어 '남도들노래'라는 이름으로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전라남도 진도군에서는 박동매(朴東梅)와 이영자(李英子)가 전승자로 활동하고 있다.
「길군악」은 특정 악곡으로 존재하기보다 다양하고 자유로운 형태로 불러온 소리다. 시간이 흐르면서 귀인의 행차나 군대의 행진에 쓰이는 행악을 모방한 「길군악」으로 만들어졌으며, 농촌에서는 주변의 흥겨운 노래나 발랄한 소리를 길노래로 활용해 부르기도 하였다. 특히 호남 지방의 「길군악」[「질꼬내기」]에 보이는 사당패 소리의 흔적은 기존 음악을 선택하고 수용하는 민요 특유의 적응력과 생명력을 보여주는 점에서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