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좌랑, 예조정랑, 장례원판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이수익(李壽益)의 천거로 사재주부에 임명되었다가 예조좌랑 · 예조정랑이 되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유승현(柳升鉉)을 장수로 삼아 의병을 일으켰다가 난리가 평정되어 파하였다.
그 뒤 사예 · 병조정랑 등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1732년 품계가 통정대부에 오르고 호군(護軍)에 임명되었다가 바로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가 되었다. 권두경(權斗經) · 이재(李載) · 조덕린(趙德隣) 등과 교우를 맺었다.
1788년(정조 12) 이진동(李鎭東) 등이 이인좌의 난에 공을 세우고 포상받지 못한 31인의 치적을 상소할 때에 제일 앞에 놓였다. 낙연서원(洛淵書院)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죽봉문집(竹峯文集)』 2책이 있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죽봉문집(竹峯文集)』
- 『계유식년사마방목(癸酉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6024-10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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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사마시 급제 : 『계유식년사마방목(癸酉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602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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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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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김간 저술 : 『죽봉선생문집(竹峯先生文集)』(영남대학교 도서관 古 810.819-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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