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석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시대 전라도수군도절제사, 전라우도방어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인물/전통 인물
  • 본관나주(羅州)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전라우도방어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한충희 (계명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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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전라도수군도절제사, 전라우도방어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석지(錫之), 호는 용주(龍洲)이다. 김정준(金廷儁)의 현손(玄孫)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28년(중종 23) 평안도순변사 허굉(許硡)의 군관이 되어 서북야인의 토평에 참여하였다. 1540년 의주목사가 되었으며, 이후 김해부사를 거쳐 1547년(명종 2) 사은부사(謝恩副使)가 되어 1548년(가정 27, 명종 3) 효열황후(孝烈皇后) 상사 때 진위사 이순형(李純亨)과 함께 진향사 김경석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54년(명종 9) 전라도수군도절제사로 파견되어 흑산도에 숨어 있는 왜적을 토벌하였고, 그 공으로 한 계급이 올랐다. 파직 중인 1555년(명종 10)에 삼포왜란 이래 조선의 일본에 대한 세견선의 감소에 고난을 받아온 왜구들이 배 60여 척을 이끌고 전라도에 침입할 때, 이를 방어하기 위하여 이미 파직된 무신들을 서용함에 따라 전라우도방어사에 기용되었다.

강진에 진을 치고 나주 이남을 왜의 침구로부터 보호하는 등 공헌한 바가 컸으나, 같은 해 왜변이 진압되면서 아군이 대패한 영암전투 때에 지척에 있으면서 출동하지 않았다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그 대간은 죄를 줄 것을 요구하는 반면, 홍문관은 오히려 공로에 대한 표창을 해야 한다는 등 공로와 죄과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었으나 결말을 보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선조실록(宣祖實錄)』

주석

  • 주1

    : 왜구토벌 및 승진 : 『명종실록』 16권, 1554년(명종 9) 2월. "전라 수사 김경석이 적왜를 참획한 사실을 알려와 한 자급을 올려 주게 하다"

  • 주2

    : 방어사 임명 : 『명종실록』 18권, 1555년(명종 10) 5월 16일. "이준경·김경석·남치근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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