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용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기관지 출판위원, 조선신문사 편집국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3년(고종 40)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함경남도 함흥
관련 사건
조선공산당재건협의회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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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일제강점기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기관지 출판위원, 조선신문사 편집국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함경남도 함흥 출신이다. 동경제국대학 미학과를 중퇴하였다. 재학 중 신인회(新人會)에 가입했고, 반제동맹(反帝同盟)에도 참가하였다. 1927년 제3전선에 가담, 같은 해 10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동경지부 결성에 참여하여 『예술운동』을 창간하였다. 1928년 5월경에는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 기관지 편집 겸 출판위원이 되었다.

1929년 5월 동경에서 무산자사를 결성하고, 위원장이 되어 『무산자』를 발행하였다. 이 잡지에 「정치적 시각에서 본 예술투쟁」,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투쟁해야 할 것인가」 등의 글을 발표하였다.

11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중앙집행위원장으로서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라는 팸플릿을 만들어,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을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로 해소하는 데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아울러 『전기(戰旗)』에 「천기(川崎) 난투사건의 진상」을 투고하기도 하였다. 1930년 4월 ‘조선공산당재건협의회사건’에 연루되어 검거되었다.

1931년 11월에는 동지사(同志社)를 결성해 조직을 주도하였다. 이듬해 출옥한 후 일본프롤레타리아문화연맹 조선협의회 위원장, 기관지 『우리동무』 편집장이 되었고, 3월경 일본프롤레타리아문화연맹 산하 프롤레타리아과학연구소에 식민지반을 조직하였다. 이후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12월 동경공소원(東京控訴院)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1934년 4월 출옥하였다.

1935년 『生きた新聞』, 『문학평론(文學評論)』 등에 다수의 원고를 집필하였다. 같은 해 5월 조선예술좌를 창립하고 위원장이 되었다. 1936년 2월경 조선신문사 편집국원이 되었다. 7월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1939년 1월 동경공소원에서 징역 1년 8월을 선고받았다.

1945년 8월 서울에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결성에 참여하고, 9월 재일본조선과학기술단을 결성하였다. 또한 정치범석방운동촉진연맹 결성에 참여하여 연맹의 위원장이 되었다. 10월 재일본조선인연맹 결성에 참여했으며, 12월 일본공산당 조선인부 부부장으로 선임되었다. 이와 함께 일본공산당 조선인부 부부장, 중앙위원 후보로 활동하였다.

일본공산당 기관지 『전위(前衛)』에 「일본에서 조선인 문제」(창간호), 「조선인운동은 전환해 가고 있다」(제14호), 「조선인운동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제16호) 등을 기고하였다. 1947년 2월 재일본조선문화단체연합회에 참여했으며, 『일본에서의 반조선민족운동사』(鄕土書房, 1947), 『조선근대사회사화』(鄕土書房, 1947)를 집필하였다.

1948년 11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갔다. 북조선노동당 제2차 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20인 후보위원 중 한 사람이 되었는데, 유일하게 반대표를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후 16위 후보위원이 되었으나 제3차 대회에서는 전향한 전력이 문제가 되어 후보가 되지 못하였다.

그 뒤 역사편찬위원회, 외문출판사 국장, 해주박물관 직원으로 근무했고, 국제무역위원회 기관지 편집을 담당하였다. 이후 한동안 청진제관공장에 근무하기도 하였다.

공저로 『조선민족해방투쟁사』(1949)가 있다.

참고문헌

「재일조선인운동과 김두용」(김인덕, 『한국민족운동사연구』 18, 1998.6)
『近代日本社會運動史人物大事典』(近代日本社會運動史人物大事典編纂委員會 編, 日外アソシエ○ツ, 1996)
『社會運動の狀況』(1930·1933·1936·1937)
『特高月報』(1932.6·1941.12)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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