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형조판서, 호조판서, 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해 흉년이 들어 재해가 혹심하자 구황책(救荒策)을 올려, 농사에 피해를 입은 각 고을의 조세를 감면할 것, 각 도에 조관(朝官)을 파견해 농민의 고통을 위로할 것, 풍년이 들 때까지 중앙과 지방의 영선(營繕)을 금할 것, 변방 방어에 특별히 공이 많은 자를 등용할 것 등을 건의하였다.
1428년 형조참판으로서 분용미(分用米)를 추징하지 않은 책임으로 회인(懷仁)에 유배되었다. 그 후 곧 풀려나 경창부윤(慶昌府尹), 중군동지총제(中軍同知摠制)를 거쳐 1429년 사은부사(謝恩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이조참판 · 함길도도관찰사를 거쳐, 1433년 중추원부사가 되고 그 해 사은사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와 공조좌참판을 역임하고 황해도관찰사로 나갔다.
이듬해 인수부윤(仁壽府尹)을 거쳐, 1435년에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그 뒤 1437년에 호조참판이 되고, 이듬해 이조참판 등을 거쳐, 1439년에는 형조판서에 올랐다. 이어 호조판서와 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단의(端懿: 단아하면서도 의연함)하고 일을 빈틈없이 처리하였다. 시호는 희경(僖敬)이다.
참고문헌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주석
-
주1
: 부친 : 『세종실록』 125권, 1449년(세종 31) 8월 27일. "중추원 사 김맹성의 졸기"
-
주2
: 시호 추증 : 『세종실록』 125권, 1449년(세종 31) 8월 27일. "중추원 사 김맹성의 졸기"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