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량이 쫓겨나자 다시 부수찬이 되었으며 헌납 · 지평 · 교리 · 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1568년 함경도의 군무를 순안할 때 산천의 형편을 두루 다니며 살펴보고 요해지(要害地)의 방비 등을 자세하게 보고하였다. 그해 종성부사가 되었고, 그 뒤 동래부사 · 판결사 · 형조참의 · 나주목사 · 정주목사를 지냈다.
1579년 의주목사가 되고 이어 평안병사 · 호조참판 · 전라감사 · 한성부좌윤 · 경기감사 · 병조참판을 거쳐, 1584년 함경감사 · 형조판서 · 도총관을 지냈다. 1587년 우참찬으로 승진했고, 이 때 왜구가 녹도(鹿島)를 함락하자 도순찰사(都巡察使)가 되어 이를 퇴치하였다. 이어 형조판서 · 경기감사를 거쳐 좌참찬으로 지의금부사를 겸했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난을 수습하는 데 공을 세워 평난공신(平難功臣) 3등에 책록되고 경림군(慶林君)에 봉해졌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검사에 이어 팔도도원수가 되어 한강 및 임진강을 방어했으나, 중과부적으로 적을 막지 못하고 적의 침공만을 지연시켰다.
평양이 함락된 뒤 순안에 주둔해 행재소(行在所) 경비에 힘썼다. 이듬해 명나라 원병이 오자 명나라 장수들의 자문에 응했고, 그 뒤 호조 · 예조 · 공조의 판서를 지냈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병조판서로 유도대장(留都大將)을 겸임했고, 좌찬성 · 이조판서 · 우의정을 거쳐 1601년 부원군에 봉해지고 좌의정에 이르렀다. 유학에 조예가 깊었고, 병서와 궁마(弓馬)에도 능하였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택당집(澤堂集)』
- 『월사집(月沙集)』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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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사마 급제 : 『가정37년무오식년추사마방목(嘉靖三十七年戊午式年秋司馬榜目)』(『연계방(蓮桂榜)』, 국립중앙도서관[古602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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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七(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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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공신 책록 : 『선조수정실록』 24권, 1590년(선조 23) 8월 1일. "광국 공신과 평난 공신에게 녹권을 반사하고 대사령을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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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시호 추증 : 『인조실록』 28권, 1633년(인조 11) 1월 26일. "심지원·윤전·김휼·박지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고 고 상신들에게 시호를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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