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현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형조판서, 예조판서,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원부(元敷)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광산(光山)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58년(철종 9)
  • 출생지서울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유영익 (한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12월 22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형조판서, 예조판서,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원부(元敷). 서울 출신. 김재홍(金在弘)의 아들이고, 김재청(金在淸)의 양자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78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84년 안악군수(安岳郡守)로 있을 때 민요(民擾)가 있자, 황해감사 윤우선(尹宇善)으로부터 문책을 당하였다.

갑신정변 신내각의 병조참의였으며, 1885년부터 1891년까지 한성부좌윤 · 이조참의 · 공조참판 · 대사성 · 형조참판 · 대사헌 · 형조판서 · 예조판서 등을 지냈다. 1893년 동학교도의 보은집회(報恩集會)가 있자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에서 전라도관찰사로 임명되었다.

1894년 2월 고부민란(古阜民亂)이 일어나자 군수 조병갑(趙秉甲)을 체포하는 한편, 고부에 속리를 보내 사건의 주동자인 전봉준(全琫準)을 회유 내지 붙잡도록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뒤 동학농민군이 봉기하여 부안군아(扶安郡衙)를 습격하는 등 민란의 규모가 확대되자, 영장(營將) 이광양(李光陽) 등에 명하여 동학농민군을 토벌하게 하였다. 그러나 황토현전투(黃土峴戰鬪)에서 패퇴함으로써 문책, 파면되고 거제도에 유배되었다.

참고문헌

  •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 『동학란기록』 상(국사편찬위원회, 1974)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二(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 주2

    : 전라도 관찰사 임명 : 『고종실록』 30권, 1893년(고종 30) 2월 27일. "이용직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주3

    : 거제도 유배 : 『고종실록』 31권, 1894년(고종 31) 5월 8일. "김문현을 거제부에 안치하라고 명하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