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격문 ()

근대사
작품
동학농민군이 제1차 봉기 때 전라도 무장에서 발포한 격문.
정의
동학농민군이 제1차 봉기 때 전라도 무장에서 발포한 격문.
개설

발포 일자는 1894년 4월 25일(음력 3월 20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격문에는 동학농민군의 봉기 목적이 잘 나타나 있다.

내용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귀하다 하는 것은 인륜이 있기 때문이다. 군신부자(君臣父子)의 관계는 인륜 중에서 가장 큰 것이다. 임금이 어질고 신하가 곧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고 아들이 효도한 이후에야 집과 국가가 무강(無疆)의 복을 누릴 수 있다.

지금 우리 임금은 인효자애(仁孝慈愛)하고 신명성예(神明聖叡)한지라, 현량방정(賢良方正)의 신하가 있어서 그 총명을 도울지면 주4의 덕화(德化)와 문경(文景)의 선치를 가히 바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하된 자는 보국(報國)을 생각하지 않고 한갓 녹(祿)과 위(位)만 도둑질하여 임금의 총명을 가리고 아부나 아첨만을 일삼아 주5하는 선비의 말을 주6이라 하고 정직한 사람을 주7라 하니, 안으로는 보국(輔國)의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학정(虐政)의 관리만 많도다.

이에 인민의 마음은 날로 흩어져 즐거운 삶의 생업(生業)이 없고 나아가 몸을 보존할 대책이 없다. 학정은 날로 더해가고 원성은 그치지 않으니, 군신의 의(義)와 부자의 윤(倫)과 상하의 분(分)이 드디어 다 무너지고 말았다.

관자(管子)주8가 가로되 주9가 베풀어지지 않으면 국가는 멸망한다 하였으니 오늘의 형세는 옛날의 그것보다 더 심하도다 ……. 우리는 비록 초야의 유민(遺民)일지라도 군토(君土)를 먹고 군의(君衣)를 입고 사는 자이다.

어찌 국가의 위망(危亡)을 앉아서 보기만 하겠는가! 주10가 마음을 합하고 수많은 백성의 뜻을 모아 이제 의로운 깃발을 들어 보국안민(輔國安民)으로써 사생(死生)의 맹세를 하오니, 금일의 광경은 비록 놀랄만한 일이기는 하나 경동(驚動)하지 말고 각자 그 업을 편안히 하여 승평일월(昇平日月)을 함께 빌고 임금의 덕화를 함께 입게 되기를 바라노라.”

의의와 평가

이 격문을 보면 동학농민군은 유교적인 이상국가관에 입각해 당시 정치를 비판하고, 그의 주2을 촉구하기 위해 봉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그들의 비판 대상은 당시 권력구조의 정점(頂點)을 차지하고 있던 국왕이 아니라, 그를 떠받치고 있던 주1들이었다.

즉, 동학농민군은 중앙의 주3였던 민씨척족(閔氏戚族)과 그에 기생하여 탐학을 일삼고 있던 지방수령 및 아전들을 제거하여 기울어진 조선왕조의 국운을 회복하여 백성들의 생계를 도모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 점에서 이 격문은 동학농민군 제1차 봉기의 표어였던 ‘권귀진멸(權貴盡滅)’과 ‘보국안민’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혀준다.

참고문헌

『동학란기록』(국사편찬위원회, 1974)
「갑오농민전쟁의 제1차농민전쟁」(신용하, 『한국학보』40, 1985)
「동비토록」(학회자료, 『한국학보』2, 1976)
「동비토록-해제-」(신용하, 『한국학보』2, 1976)
주석
주1

권세를 잡은 신하. 또는 권세 있는 신하. 우리말샘

주2

잘못된 것이나 부정(不正) 따위를 바로잡아 고침. 우리말샘

주3

지위가 높고 권세가 있음. 또는 그런 사람. 우리말샘

주4

고대 중국의 요임금과 순임금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5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윗사람의 잘못을 간함. 우리말샘

주6

인심을 혼란하게 만드는 요사스러운 말. 우리말샘

주7

무기를 가지고 떼를 지어 다니면서 사람을 해치거나 재물을 빼앗는 무리. 우리말샘

주8

중국 춘추 시대의 제나라 재상인 관중(管仲)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책. 부민(富民), 치국(治國), 포교(布敎)를 서술하고 패도 정치를 역설하였다. 원본은 86편이었다고 하나 원나라 이후 76편이 남아 오늘날까지 전한다. 우리말샘

주9

사방의 네 방위인 건(乾)ㆍ곤(坤)ㆍ간(艮)ㆍ손(巽). 곧 서북ㆍ서남ㆍ동북ㆍ동남의 네 방위를 이른다. 우리말샘

주10

조선 시대에, 전국을 여덟 개로 나눈 행정 구역. 강원도,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를 이른다. 우리말샘

집필자
유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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