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조

  • 역사
  • 인물
  • 개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한국독립당 동북의용군 사령, 중한연합군 부사령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칭
  • 이칭병도(炳道), 병조(炳朝), 영호(永浩), 이준열(李峻烈)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38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5년(고종 32)
  • 출생지평안남도 대동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인덕 (동국대학교, 부교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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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한국독립당 동북의용군 사령, 중한연합군 부사령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평안남도 대동 출신. 이명은 병도(炳道), 병조(炳朝), 이준열(李峻烈), 영호(永浩).

생애 및 활동사항

1919년 평남에서 3·1운동에 참가했다. 1920년 평양에서 김석황(金錫璜)·김동선(金東宣) 등이 일제 관리의 암살, 관공서의 폭파를 통하여 조선독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직한 비밀결사 의용단(義勇團)에 가입했다.

이와 함께 독립공채를 배포하는 등 활동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을 받았으며 1922년 5월 14일 가출옥했다. 이 후 1925년 12월 나가사키[長崎]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5년을 받고 1929년 3월 24일 출옥한 후 다시 상해(上海)로 가서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1938년 2월경 한국독립당의 동북의용군(東北義勇軍) 사령(司令), 중한연합군(中韓聯合軍) 부사령(副司令) 등으로 무징항일 투쟁을 전개하다가 상해에서 일본 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 도중 배 안에서 자살을 기도하여 인천도립병원에 입원했으나 1938년 5월 26일 순국했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유공자공훈록』 12(국가보훈처,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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