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산(安山). 초명은 상현(尙炫). 자는 경숙(敬叔). 호는 창암(蒼巖). 중인 출신. 김진무(金振武)의 7세손이라고 하나 가계는 자세히 알 수 없으며, 아들 김제량(金濟良)이 영·정조시대에 시인으로 행세하였고, 손자인 김종식(金宗軾) 또한 시인 장혼(張混)과 친구로 여항의 시인이었다.
정5품의 품계인 통덕랑(通德郎)을 제수 받았으나, 어떠한 관직을 역임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가정은 비교적 윤택하였다고 전해진다. 어려서부터 큰아버지에게서 학문을 익혔고 장성해서는 장인인 장창한(張昌漢)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초기 여항문학이 대두하던 시대에 활동하였던 시인으로, 『풍요속선(風謠續選)』에 시가 실려 있다. 여항시인으로 이름 있는 엄한붕(嚴漢朋)과 가까이 지냈고, 홍우택(洪禹澤)·전만종(田萬種)·최상집(崔尙楫) 등과 어울렸다. 글씨에 능해 초서·해서를 잘하였다.
조엄(趙曮) 등 풍양조씨 일가에서 서리를 지내면서, 한편으로 유자(儒者)의 도리를 좇는 데 치중하였다. 인간이 초목금수와 구분되는 요소 8가지를 제시하여 이를 효·제·충·신·예·의·염(廉)·치(恥)라고 규정하였으며, 이들 요소를 주제로 잠언(箴言)을 짓기도 하였다.
그의 시에는 이와 같은 덕성이 반영되어 조탁을 일삼지 않고 돈박(敦樸)하며, 또한 섬세한 묘사에도 뛰어나다는 평을 얻는다. 언행이 조심스러웠고 특히 자식교육에 힘써 아들이 불민한 것은 아비가 불민해서이며, 아들이 무식하면 이 또한 아비가 무식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계자책기(戒子責己)」라는 시를 쓰기도 하였다.
아들 김제량과 손자 김종식도 시로써 이름을 날려, 3대를 이어 시명을 떨쳤다. 저서로 『창암집』 3권 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