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창

  • 역사
  • 인물
  • 개항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선천경찰서 투탄 의거를 지원한 목사·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경주(慶州)
  • 사망 연도1950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76년(고종 13)
  • 출생지평안북도 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원옥 (조선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선천경찰서 투탄 의거를 지원한 목사·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평안북도 철산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910년 평양 예수교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 1920년 선천으로 이주하였고, 같은 해 8월 24일 미국의원단 일행이 선천을 통과할 때, 우리 나라의 독립을 희망함을 알리고자 하였다.

그 의원단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선천경찰서를 폭발하려 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같은 해 9월 광복군총영 결사대원 박치의(朴致毅)가 선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사건에 관련되어 붙잡혔다. 1921년 4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8년형을 언도받았다.

1928년 평안북도 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을 역임, 교무를 보다가 광복이 되자 선천군 인민위원회 위원으로 있으면서, 6·25남침 때 유엔군이 북진하여 선천으로 진격해오자 이를 환영하였다. 그러나 유엔군이 곧 후퇴해버리자 북로당원에 의해 총살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운동사자료집』1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 - 『독립운동사』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신재홍, 한국민족운동연구소,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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