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철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전기 공조참판, 병조참판,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56년(세조 2)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관직
동지중추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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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조선전기 공조참판, 병조참판,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1490년(성종 21) 부장(部將)이 되고 이어서 남포현감(藍浦縣監)·훈련원판관·제포첨절제사(薺浦僉節制使)를 거쳐 1500년(연산군 6)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 1506년 평안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1507년(중종 2) 이과옥사(李顆獄事)에 연루되어 국문을 받았으나 무사하였다.

1510년(중종 5) 제포·부산포의 항거왜인(恒居倭人)들이 대마도주의 내원을 받아 살인, 방화, 약탈하는 등 삼포왜란(三浦倭亂)을 일으키자, 김석철은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서 즉시 조정에 보고, 중앙에서 출동한 군대와 합세하여 이를 진압하였다. 이어서 경상우도방어사가 되었다.

제주도 방어의 중요성이 제고됨에 무재(武才)가 특출한 자로 지목되어 제주목사로 전출되었다. 1513년 한성좌윤이 되어 귀경, 군사의 부실, 호활(豪猾: 세력이 있으면서 교활한 사람)들의 양민 모점(冒占: 무모한 점령), 양마(良馬)의 상잡(相雜) 등 제주의 폐막(弊瘼: 고치기 힘든 폐단)을 논하고 그 시정을 촉구하였다.

1514년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함경북도병마절도사를 거쳐 다시 한성좌윤이 되었다. 1516년에 공조참판이 되고 진하 겸 정조사(進賀兼正朝使)로 다시 명나라에 가서 이듬해 돌아왔다. 1518년 병조참판이 되었으며 그 뒤 수시로 어전에서 병가방략(兵家方略)을 강론하였고, 1520년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성종실록(成宗實錄)』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중종실록(中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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