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철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전기 공조참판, 병조참판,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동지중추부사
  • 출생 연도1456년(세조 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문수홍 (경기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1월 13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전기 공조참판, 병조참판,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1490년(성종 21) 부장(部將)이 되고 이어서 남포현감(藍浦縣監) · 훈련원판관 · 제포첨절제사(薺浦僉節制使)를 거쳐 1500년(연산군 6)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 1506년 평안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1507년(중종 2) 이과옥사(李顆獄事)에 연루되어 국문을 받았으나 무사하였다.

1510년(중종 5) 제포 · 부산포의 항거왜인(恒居倭人)들이 대마도주의 내원을 받아 살인, 방화, 약탈하는 등 삼포왜란(三浦倭亂)을 일으키자, 김석철은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서 즉시 조정에 보고, 중앙에서 출동한 군대와 합세하여 이를 진압하였다. 이어서 경상우도방어사가 되었다.

제주도 방어의 중요성이 제고됨에 무재(武才)가 특출한 자로 지목되어 제주목사로 전출되었다. 1513년 한성좌윤이 되어 귀경, 군사의 부실, 호활(豪猾: 세력이 있으면서 교활한 사람)들의 양민 모점(冒占: 무모한 점령), 양마(良馬)의 상잡(相雜) 등 제주의 폐막(弊瘼: 고치기 힘든 폐단)을 논하고 그 시정을 촉구하였다.

1514년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함경북도병마절도사를 거쳐 다시 한성좌윤이 되었다. 1516년에 공조참판이 되고 진하 겸 정조사(進賀兼正朝使)로 다시 명나라에 가서 이듬해 돌아왔다. 1518년 병조참판이 되었으며 그 뒤 수시로 어전에서 병가방략(兵家方略)을 강론하였고, 1520년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 『중종실록(中宗實錄)』

주석

  • 주1

    : 보고 내용 : 『중종실록』 11권, 1510년(중종 5) 4월 8일. "경상우도 병마 절도사 김석철이 부산포·제포가 왜구에게 함락되었음을 아뢰다"

  • 주2

    : 상소 내용 : 『중종실록』 19권, 1513년(중종 8) 12월 26일. "제주의 폐단에 관한 한성부 좌윤 김석철의 상소문"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