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4년(성종 5)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무술 중에서도 특히 활을 잘 쏘아 당대의 명궁으로 알려졌다. 성종의 총애를 받아 선전관으로 등용된 뒤 여러 무관직을 거쳐서 1480년에 오위의 부호군(副護軍)이 되었는데, 북방의 건주야인(建州野人)을 정벌하여 전공을 세웠다.
1481년에 통정대부가 되어 병조참지(兵曹參知)로 승직되었고, 1482년 무과 출신이면서 문관직인 동부승지가 되었으며, 이어서 우승지·좌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선위부사(宣慰副使)가 되어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였다.
명나라에 머물 때 각국 사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연발연중의 활솜씨를 보여 각국 사신들을 크게 놀라게 하였다. 1486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었는데, 첩이 자기 적모상(嫡母喪)에 상복을 입지 않았다 하여 문책당한 일이 있었다.
1489년에 형조참판이 되어 품계가 가선대부에 이르렀으며, 곧 행첨지중추부사(行僉知中樞府事)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