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병조판서, 판중군도총제, 평양부원군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조선이 건국되자 1393년(태조 2)에 전중경(殿中卿)에 오르고, 이어서 이성만호(泥城萬戶)가 되었다. 1394년에 의흥삼군부첨절제사(義興三軍府僉節制使)가 되었다가 그 해 형조전서로 전임하였다. 1396년 동북면청해도안무겸찰리사(東北面靑海道安撫兼察理使)로 나가 야인 진압에 공을 세웠고, 호조전서 · 이조전서 · 중추원부사 · 경상도병마절제사 · 경상도병마도절제사를 지냈다.
1400년(정종 2)에 좌군총제로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태종이 왕위에 오르는 데 협력한 공으로, 1401년(태종 1)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4등에 책록되고 여산군(麗山君)에 봉해졌다. 태종 초에 강계만호에 이어 공조판서 ·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를 지냈다. 1406년에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07년에 동북면병마도절제사 겸 영흥부윤 · 도순문찰리사 등을 지냈다. 1410년(태종 10)에 야인이 경원(慶源)에 침입하자 왕명을 받고 나가 이를 격퇴하였다. 이듬해 참찬의정부사에 이어 1413년 서북면도순문사(西北面都巡問使) 겸 평양부윤(兼平壤府尹)을 지냈다.
1414년 병조판서로 있다가 이듬해인 1415년에 평양군(平陽君)으로 개봉되었으며, 판중군도총제(判中軍都摠制)가 되었다. 그 뒤 평양부원군에 진봉되었다. 시호는 양경(襄景)이다.
참고문헌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우복집(愚伏集)』
- 『백헌집(白軒集)』
주석
-
주1
: 좌명공신 책록 : 『태종실록』 1권, 1401년(태종 1) 1월 15일. "이저·이거이 등에게 좌명 공신의 훈호를 내리는 교서"
-
주2
: 야인 격퇴 : 『태종실록』 19권, 1410년(태종 10) 5월 29일. "동북면 경차관 윤하·박미가 경성·경원 등지의 전황에 대하여 복명하다"
-
주3
: 시호와 봉호 : 『세종실록』 23권, 1424년(세종 6) 2월 8일. "평양 부원군 김승주의 졸기"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