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청성진첨절제사, 벽동군수, 선사포첨절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청성진첨절제사(淸城鎭僉節制使)로 웅골성(熊骨城)에서 청나라 군대를 크게 무찔러, 명장 모문룡(毛文龍)의 추천으로 명나라로부터 유격(遊擊)에 임명되고 은패(銀牌)를 받았다.
조청(朝淸) 사이에 화의가 성립되어 평안도 철산의 가도(椵島)에 잔류한 명군을 치기 위해 청나라가 군사를 징발하자, 중영장(中營將)으로 임경업(林慶業)의 휘하에 있었다. 1641년 벽동군수(碧潼郡守)에 이어서 1642년에는 선천부사, 1644년에는 선사포첨절제사(宣沙浦僉節制使)가 되었다.
이 때 임경업이 명나라와 밀통한 사건에 연루되어 옥중에서 죽었다. 1707년(숙종 33) 호조판서에 추증되고, 1736년(영조 12) 철산에 정문이 세워졌으며, 철산의 충무사(忠武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철산읍지(鐵山邑誌)』
- 「정묘·병자호란의병고(丁卯·丙子胡亂義兵攷)」(이장희, 『건대사학』 4, 197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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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정묘호란시 활약 : 『인조실록』 15권, 1627년(인조 5) 3월 27일. "비국이 김여기·철산 부사 안경심·김춘발에게 상줄 것을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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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선천부사 역임 : 『인조실록』 43권, 1642년(인조 20) 10월 20일. "용골대·소현 세자 등이 한선의 출몰에 대해 논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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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임경업 관련 옥사 : 『인조실록』 45권, 1644년(인조 22) 7월 26일. "임경업 건으로 금부에 체포된 김여기가 옥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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