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판결사, 강화유수, 장례원판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36년 병자호란 때 향리에서 김지수(金地粹)와 함께 싸움터로 가는 도중 체부(體府)의 격문을 보고 함평(咸平)에서 의병을 일으켜 방어에 임하다가 상경했으나, 이미 강화가 성립되어 군사를 해산하였다.
이어 지평 · 장령(掌令) · 정언(正言) · 사간 · 집의(執義) · 필선(弼善) 등을 역임하고, 여산군수(礪山郡守)로 나가 기민(飢民)을 구휼하는 데 힘썼다. 봉림대군(鳳林大君)이 세자가 되자 진강(陳講 : 강의함)의 기회를 얻어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1647년 밀양부사로 나가 현저한 치적을 쌓았으나, 관찰사와 뜻이 맞지 않아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갔다. 그 뒤 한성부우윤에 임명되고 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황해도 · 충청도의 관찰사가 되었으나 대동법 실시의 불합리성을 주장하다가 체직되었다.
그 뒤 부총관(副摠管) · 형조참판을 거쳐 광주부윤이 되었으나 관찰사와 뜻이 맞지 않아 벼슬을 버렸다. 그러다가 형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를 거쳐 판결사(判決事)로 전직해 노비송안(奴婢訟案)을 공정히 처리하였다. 강화유수에 임명되었다가 다시 장례원판결사가 되었으나, 병을 얻어 파산(坡山)의 집으로 돌아가 치유하다가 죽었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명재유고(明齋遺稿)』
- 『남계집(南溪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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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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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강화유수 임명 : 『효종실록』 18권, 1657년(효종 8)3월 15일. "정치화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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