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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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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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인물
일제강점기 「나의 세계로」 · 「연의 물결」 · 「구리십자가」 등의 작품을 낸 극작가. 언론인.
이칭
소암(蘇巖)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0년(고종 37)
사망 연도
1962년
출생지
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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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나의 세계로」 · 「연의 물결」 · 「구리십자가」 등의 작품을 낸 극작가. 언론인.
내용

1900∼1962. 호는 소암(蘇巖). 개성 출신. 1912년 3월에 개성의 한영서원(韓英書院) 초등과를 졸업하고, 곧 중등과와 고등과를 다니면서 신학문을 배웠다. 한영서원 고등과 시절에 조선총독부에서 시행하는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했다.

1921년 2월부터 개성학당 상업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이기세(李基世)가 주도한 극단 예술협회(藝術協會)와 관련을 맺게 되었고, 이것이 희곡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예술협회의 요청으로 「정치삼매(情痴三昧)」·「시인의 가정」 등을 썼고, 계속해서 「나의 세계로」·「연(戀)의 물결」·「구리십자가」 등을 발표했다.

1922년에는 이 5편을 묶어서 우리나라의 첫 희곡집인 『황야에서』를 발간하였다. 그 뒤,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배우면서 불교조선협회 주사 겸 여자동포원 주간으로 일했다. 1925년 고한승(高漢承)·김영팔(金永八)·이경손(李慶孫)·안석주(安碩柱) 등과 극문회(劇文會)라는 연극연구단체를 창립했으나, 이 단체가 흐지부지됨으로써 그는 언론계로 옮겼다.

1927년 경성일보사에 기자로 입사했고, 매일신보의 통신부장·오사카지사장 및 경북지사장 등으로 일했다. 광복 이후에는 대구 영남일보 초대편집국장에 이어 사장을 10여 년간 역임했다.

주로 언론인으로서 활약했으나, 그의 5편의 희곡은 우리나라 근대희곡작가가 추구한 두 가지 테마 중 하나인 전통인습 타파를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작품내적인 의미가 있다. 그의 작품은 당시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진보적인 도덕관을 제시하였으나, 작품내용은 통속극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김영보희곡집』(김원중, 형설출판사, 1986)
『한국신극사연구(韓國新劇史硏究)』(이두현, 서울대학교출판부, 1966)
『황야에서』(김영보, 조선도서주식회사,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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