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행첨지중추부사, 수지중추부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판관으로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고, 1457년(세조 3) 평양소윤으로 파견되었다. 이듬해자산(慈山) 사람 임유기(任有紀) 등의 무고로 의금부에 압송 중인 자산읍 수령을 전송하며 위로한 사건으로 파직되었다가 곧 사예(司藝)에 복직되었다.
1465년 승문원판사로서 경차관의 임무를 띠고 황해도에 파견되어 도적의 죄를 다스렸다. 1466년 대사성 · 호조참의를 거쳐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이어 황해도관찰사 · 예조참의 · 충청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473년(성종 4) 예조참판으로서 성종의 생부인 의경왕묘(懿敬王廟)의 조성에 참여했고, 이듬해 동지중추부사 겸 경상도관찰사로 파견되어 왜적 토벌에 공을 세웠다.
1476년 동지중추부사로 사은사 판중추부사 박중선(朴仲善)의 부사가 되어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고, 이어 대사헌 · 예조참판 · 전라도관찰사 ·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485년 개성유수로 파견된 뒤 2년 간에 걸쳐 개성부의 유학(儒學)을 크게 진흥시켰다.
1487년 70세로 치사(致仕: 벼슬에서 물러남)를 청했으나 오히려 형조참판에 중용되었다. 1490년 가정대부(嘉靖大夫)로 품계가 오르면서 행첨지중추부사로 고쳐 임명되었고, 이후 수지중추부사 ·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순근(醇謹: 순박하면서 신중함)하고, 부지런하면서도 공평한 직무 수행으로 칭송이 있었다. 시호는 공평(恭平)이다.
참고문헌
- 『단종실록(端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순암문집(順庵文集)』
- 『사마방목(正統十二年我世宗大王二十九年丁卯式)』(하버드옌칭도서관 K 2291.7 1746(144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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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사마시 급제 : 『사마방목【정통12년아세종대왕29년정묘식】(司馬榜目【正統十二年我世宗大王二十九年丁卯式】)』(하버드옌칭도서관(Harvard-Yenching Library)[K 2291.7 1746(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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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二(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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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경차관 임무 수행 : 『세조실록』 36권, 1465년(세조 11) 7월 14일. "좌승지 윤필상이 각도에서 잡힌 도둑을 국문할 것을 건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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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시호 추증 : 『성종실록』 297권, 1494년(성종 25) 12월 6일. "수 지중추부사 김영유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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