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문경군 호서남면 통덕리 665번지에서 출생했다. 한국전쟁 발발시 중령으로 참전하여 여러 전투에서 공훈을 세우고, 1951년 7월 2일 양구군 북면 토평리지구전투에서 전사하였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김용배 중령은 제7연대 제1대대장으로 춘천 북방 지내리로 나아가 적의 남진을 막았으나, 적 전차 앞에서 패퇴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제1대대는 7월 4일에 진천-무극리-충주선으로 물러나 지연작전을 전개하였는데, 이 때 횡성·여주를 거쳐 무극리 방면으로 진출한 북한 제1사단의 1개 정찰 소대를 음성읍 부근에서 섬멸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 뒤 7월 14일부터는 문경전투에서 전과를 올렸으며, 군위 남방과 대구 동북방의 신령지구에서도 격렬한 전투를 치렀다. 그리고 아군의 북진시에는 가평·화천을 거쳐 평강·양덕 방면으로 진격하였으며, 10월 24일에는 희천을 점령한 다음 한만국경의 초산까지 진출하였다.
이때 예상치 못했던 중공군이 개입하여 전황이 불리하게 되었으나, 개천에서 평양 서변리를 거쳐 동두천-용인군 백암리에 이르기까지 작전에 계속 참가하여 적의 남침을 저지하였다.
그러나 1951년 6월 12일에는 제7사단 제5연대장으로 승진된 후 633-731고지 점령의 임무를 부여받고 격전 끝에 적 전선의 일부를 탈환하였으나, 7월 2일 양구군 북면 토평리지구전투에서 중공군 5군단 1개 연대와 전투중 적 포격에 의해 전사하였다. 전사 후 준장으로 추서되었으며,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