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아명은 재용(在用), 아호는 삼농(三儂). 서울 출신. 아버지는 종우(鍾宇), 어머니는 전영애(田英愛)이며, 부인은 심양순(沈良順)이다. 1930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4년 연희전문학교 수물과(數物科)를 마쳤다.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1939년 남캘리포니아대학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광복되던 해 9월 서울시장의 고문으로 들어갔다가 이듬해 서울시 후생국장에 기용되었다. 한때 중앙기술교육위원회 사무총장과 주택영단(住宅營團) 이사장을 지냈으며, 1950년 5·10총선거에는 서울시 서대문 갑구에서 무소속으로 입후보하여 제2대 민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1954년 국회 사무총장을 거쳐, 1955년 국방부차관, 1956년 국방부장관에 기용되었다. 1957년 주영(駐英) 초대대사가 되었다. 1958년 국제해양법회의에 한국수석대표로 참석하였고, 1959년 대한반공청년단 단장이 되었다.
1962년 국제테니스클럽회장, 5·16장학회 이사, 서울중앙기독교청년회연맹 총무, 한국문화방송주식회사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그해 8월에는 제17차 유엔총회 한국대표로 참석하기도 하였다.
민주공화당 창당에도 참여하여 1963년 당무위원에 뽑히고, 정책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1968년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사무총장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총재가 되었다. 1971년 폭넓은 사회적 명망으로 대한체육회 회장이 되었고,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하면서 대한적십자사 부총재에 부임하였다.
1972년 7월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되었으며, 1975년까지 남북적십자회담에 심혈을 기울였다. 국립묘지 유공자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