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장례원사평, 공조좌랑, 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공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반정이 성공한 뒤 논공행상을 할 때 이후원(李厚源)과 함께 극력 사양하였으나,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책봉되고, 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공조좌랑을 거쳐 김집(金集)과 함께 학행으로 추천받아 지평(持平)에 발탁되었다.
1624년 이괄(李适)의 모반에 대한 고변이 있자, 이를 믿지 않고 백방으로 이괄의 무죄를 변호하다가 모반사실이 분명하여짐에 따라 승지 김자점(金自點)의 건의로 투옥되었고, 이어 반란군의 공격으로 조정이 피난할 때 적에게 이용될 염려가 있다는 김자점의 주장에 따라 옥중에서 참살당하였다.
1661년(현종 2) 부인 이씨의 억울함을 소송으로 해결하여 훈작(勳爵)이 복구되고 호조판서·월성군(月城君)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강민(剛愍)이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송자대전(宋子大全)』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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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죽음 : 『 인조실록』 4권, 1624년(인조 2) 2월 8일. "김원량을 참수하다. 김극전·김극명·조희형 등이 탈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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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시호 추증 : 『정조실록』 25권, 1788년(정조 12) 4월 6일. "연안군 이숙기 등 24명에 시호를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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