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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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인물
일제강점기 때, 김동인 등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문예동인지 『창조』를 창간하였으며, 「배교자」, 「삼천오백냥」 등의 희곡을 저술한 문인.
이칭
이칭
김찬영(金讚永)
인물/근현대 인물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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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김동인 등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문예동인지 『창조』를 창간하였으며, 「배교자」, 「삼천오백냥」 등의 희곡을 저술한 문인.
내용

본명은 찬영(讚永). 1919년에 김동인(金東仁)·김억(金億)·전영택(田榮澤)·주요한(朱耀翰)·김환(金煥) 등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문예동인지 『창조(創造)』를 창간하였다.

그러나 그는 평론과 희곡을 몇 편 썼을 뿐, 적극적인 문단활동이나 연극운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비평의 경우, 김동인과 염상섭(廉想涉)의 논전에 끼어들어 「작품에 대한 평가적 가치」라는 평을 쓰기도 했다.

비록 그는 본격적인 극작가는 아니었지만 극작가가 영성했던 1920년대 초에 몇 편의 희곡을 통해 식민지현실을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종교를 빌려 우회적으로 일제에 항거한 작품인 「배교자(背敎者)」(1923), 하급노동자들의 실직과 가난을 통해 식민지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그린 「삼천오백냥(三千五百兩)」(1924) 등의 작품을 남겼다.

참고문헌

『한국현대희곡사(韓國現代戱曲史)』(유민영, 홍성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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