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가난한 집안에서 아우와 함께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호조좌랑에 추증된 학자.
이칭
이정(而正)
일성재(日省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38년(인조 16)
사망 연도
1708년(숙종 34)
본관
경주(慶州)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가난한 집안에서 아우와 함께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호조좌랑에 추증된 학자.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이정(而正), 호는 일성재(日省齋). 아버지는 호군(護軍) 김여호(金汝瑚)이다. 전라도도사이자 정여립 사건으로 화를 당한 조대중(曺大中)이 증손자다. 대대로 충청도 영동(永同)에서 살았다.

생애 및 활동사항

집안이 워낙 가난하여 부모에 대한 봉양이 항상 변변치 못한 까닭에 외지에 나가서 별미의 음식을 받으면 감히 먹지를 못하였으며, 어머니가 전염병을 앓을 적에는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수십일을 연명시켰으며, 뒤에 아버지가 병들었을 적에도 그렇게 하고, 초상을 당하여서는 매일같이 무덤 앞에 가서 울었다.

군수가 이를 가상히 여겨 조문은 물론, 매월 삭망마다 제물을 보내주었다. 만년에 두어칸의 초가를 지어 ‘일성재(日省齋)’라 이름하고 아우와 함께 학문을 닦았는데, 비록 초야에 묻혀 살지만 우국의 충정은 버릴 수 없어 소(疏)를 올려 시폐를 극렬히 논하기도 하였다. 1714년(숙종 40)에 아우와 함께 호조좌랑에 추증되고, 충효사(忠孝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영동읍지(永同邑誌)』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