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이정(而正), 호는 일성재(日省齋). 아버지는 호군(護軍) 김여호(金汝瑚)이다. 전라도도사이자 정여립 사건으로 화를 당한 조대중(曺大中)이 증손자다. 대대로 충청도 영동(永同)에서 살았다.
집안이 워낙 가난하여 부모에 대한 봉양이 항상 변변치 못한 까닭에 외지에 나가서 별미의 음식을 받으면 감히 먹지를 못하였으며, 어머니가 전염병을 앓을 적에는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수십일을 연명시켰으며, 뒤에 아버지가 병들었을 적에도 그렇게 하고, 초상을 당하여서는 매일같이 무덤 앞에 가서 울었다.
군수가 이를 가상히 여겨 조문은 물론, 매월 삭망마다 제물을 보내주었다. 만년에 두어칸의 초가를 지어 ‘일성재(日省齋)’라 이름하고 아우와 함께 학문을 닦았는데, 비록 초야에 묻혀 살지만 우국의 충정은 버릴 수 없어 소(疏)를 올려 시폐를 극렬히 논하기도 하였다. 1714년(숙종 40)에 아우와 함께 호조좌랑에 추증되고, 충효사(忠孝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