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7년(태종 17) 절일사(節日使) 통사(通事)가 되고, 이듬해 성절사(聖節使) 통사로 명나라에 다녀와 지사역원사(知司譯院事)가 되었으며, 1423년(세종 5) 대호군(大護軍)이 되었다.
그 해 압마관(押馬官)으로 잡색마(雜色馬) 700필을 요동(遼東)에 진헌하고 돌아와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가 되고 『요동견문록(遼東見聞錄)』을 썼다. 하등극사(賀登極使) 통사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1431년 상호군(上護軍)이 되어 이듬해 소 1,000마리를 요동에 진헌하였다.
1433년 이후 야인(野人)의 침입이 빈번해지자 주문사(奏聞使)로 몇 차례 명나라에 다녀왔다. 1435년 첨지중추원사, 1441년 중추원부사가 되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와 이듬해 인수부윤(仁壽府尹)이 되었다.
이어서 동지중추원사를 거쳐 1445년에는 다시 중추원부사를 역임하였다. 명나라의 사절 내왕이 빈번하였던 조선 전기 통사로, 경륜을 쌓은 뒤로는 사신으로 거의 매년 명나라에 파견되어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