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덕

  • 역사
  • 인물
  • 개항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임시의정원 비서, 교하중학교 교장, 정의부 중앙상임대의원, 국민부 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칭
  • 이칭김구(金球), 김구(金龜)
  • 백송(白松)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81년 7월 1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3년(고종 30)
  • 출생지평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원옥 (조선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임시의정원 비서, 교하중학교 교장, 정의부 중앙상임대의원, 국민부 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일명 김구(金球 또는 金龜). 호는 백송(白松). 평양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919년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배포책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평양숭실학교(崇實學校) 교사 및 청년들을 중심으로 청년회를 조직하여 회원 70여 명을 확보, 선봉대 구실을 하며 활동하다가 기소되자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비서로 근무하였다.

1921년 임시정부의 명령으로 국내와의 연락과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평양에 잠입했다가 조선총독부경찰에 잡혔으나 가족의 협조로 다시 상해로 탈출한 뒤 만주의 연길현(延吉縣) 쌍하진(雙河鎭)에서 한인자위단장(韓人自衛團長)으로 활약하였다.

1923년 임시정부의 명령으로 공채모집(公債募集)을 위하여 또다시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활약하였으며, 1925년에는 중국 산둥성(山東省)과 진남포 등지의 연락조직책으로 귀국하여 활동하였다.

1926년 정의부(正義府)가 세력만회를 위해 간부진을 개선할 때 만주 액목현 지방총관에 선임되었으며, 그 곳 납법구 교하중아학교(蛟河中亞學校) 교장으로 있으면서 정의부 중앙상임대의원이 되었다.

1930년 8월 국민부(國民府)가 길흑특별위원회(吉黑特別委員會)를 편성할 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그 뒤 의열단(義烈團)에 가담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운동사』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 - 『한국독립운동사』 4(국사편찬위원회, 1968)

  •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