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순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판한성부사, 평안도관찰사,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호공호(恭胡)
인물/전통 인물
  • 본관경주(慶州)
  • 사망 연도1483년(성종 1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지중추부사
  • 출생 연도1407년(태종 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한충희 (계명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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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판한성부사, 평안도관찰사,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김계성(金季誠)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29년(세종 11) 스물세 살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437년 문음(門蔭)으로 충훈부사승(忠勳府司丞)에 제수, 이후 전농시직장(典農寺直長)·한성부중부령(漢城府中部令)·감찰 등을 지냈다.

병조좌랑 재직 중 부사직(副司直) 이보흠(李甫欽)을 사직에 잘못 승수(陞授: 품계를 올려 제수함)시킨 사건에 연루되어 논죄되었으나 공신자손이라 하여 파직에 그쳤다. 그 뒤 복직되어 봉상시판관(奉常寺判官)·병조정랑·장령(掌令)·개성부단사관(開城府斷事官) 등을 지냈다.

1455년(세조 1)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고, 이어 우사간대부(右司諫大夫)를 거쳐 형조참의·동부승지·도승지·이조참판·경기관찰사·한성부윤(漢城府尹) 등을 지냈다. 1464년 대사헌, 1469년(예종 1)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병으로 사직하였다.

그 뒤 복직하여 개성부유수·판한성부사·평안도관찰사를 거쳐 1476년(성종 7) 지중추부사로 벼슬에서 물러나기를 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재직 중 뚜렷한 업적은 없으나 시사(詩詞)에 능통하여 명성이 높았고 세조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시호는 공호(恭胡)이다.

참고문헌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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