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월성 출신. 1919년 여름 송두환(宋斗煥)·최해규(崔海奎)와 함께 각자 동지들을 규합, 700원을 갹출하여 대구 서천 대전정에 가옥을 매입하여 최해규를 거주하게 하면서 동지들의 연락장소로 삼고 자금 600원을 갹출하여 신의주 노송점에 가옥을 매입하여 송협욱(宋埉郁)을 거처하게 하여 표면적으로는 상업을 경영하는 척하면서 이면에서는 연락장소로 삼았다.
1920년 12월, 김명제(金明濟)와 상의하여 만주 봉천에서 권총 3정과 실탄 300발을 구입한 뒤 김봉규(金鳳奎)와 같이 경상남도 합천의 부호인 진사 정달락(鄭達洛)으로부터 군자금 40원을 수령하고, 같은 달 8일에는 의령군의 부호 남정구(南廷九)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요구하다 남정구의 계략에 빠져 경찰에 체포되었다.
연행 중 조선총독부 순사를 사살하고, 한국인 순사 손기수(孫騏秀)에게 중상을 입히고 만주로 탈출하였다. 그 뒤 상해로 건너가 의열단(義烈團)에 입단하여 만주 등지를 내왕하면서 1928년까지 항일운동을 계속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이,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