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김좌진은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향산리에서 태어나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하였다.
일찍이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서다가, 일제에 의해 강점당한 1910년대 이후에는 격렬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1920년 청산리전투에서는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는 대 전과를 올렸다.
이 후에도 주로 만주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1930년 1월 24일중동선(中東線) 산시역(山市驛) 앞 자택에서 200m 거리에 있는 정미소에서 공산주의자 박상실(朴尙實)의 흉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당시 장군의 돌연한 비보가 전해지자 당시 국내외 혁명동지들의 놀라움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중국인까지도 아연실색하였다. 특히 국내에서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양대 신문사에서 사원을 급파하고 정중한 조의와 거액의 부의금을 전달하였다.
재만혁명동지들은 중동선 산시역에서 사회장(社會葬)으로 장의(葬儀)를 마쳤다. 그 후 동지들에 의해 유해는 비밀리에 고국으로 운구(運柩)되어 서부면 이호리(梨湖里)에 안장되었다가 1957년 정월에 지금의 묘지인 보령시 청소면에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