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징언(澄彦). 고려 명장 김취려(金就礪)의 14대손으로, 아버지는 증 병조참판 김광필(金匡弼)이다.
처음에는 학문에 뜻을 두어 경사에 통달하였으나 그 뒤 무예를 더욱 연마하여 1605년 무과에 급제, 부장(部長)을 거쳐 선전관이 되고, 이어 교동현감(喬桐縣監)을 지냈다.
모친상을 마치고 다시 선전관에 임명되었으나, 광해군의 어지러운 정치에 실망하여 선향인 고부로 내려가 10년간 벼슬하지 않았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도총부도사(都總府都事)가 되고, 경력(經歷)을 거쳐 죽산부사로 나갔다.
이듬해 이괄의 난 때에는 후영장(後營將)으로 임진강 상류에 있는 영평산성(永平山城)을 지켰으며, 난이 평정된 뒤에는 의주부윤·훈련원정(訓鍊院正)·봉산군수(鳳山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1625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승진하여 안주목사 겸 방어사가 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 후금군에게 안주성이 함락되자 처자와 함께 분신자결하였다.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고부의 정충사(旌忠祠), 안주의 충민사(忠愍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장무(壯武)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