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숙평(叔平).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이고, 아버지는 승지 김제겸(金濟謙)이며, 어머니는 도사 송병문(宋炳文)의 딸이다.
경종 연간에 신임옥사가 일어나 1722년(경종 2)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사사되고 어린 나이에 금산(錦山)에 유배되었다가 1726년(영조 2)에 풀려나 여주의 양지(陽智)에서 살았다. 소론이 몰락하고 노론이 집권하자 1755년 선공감역(繕工監役)과 익위사부수에 보직되었으나 동료관원 가운데 소론이 끼어 있다고 나아가지 않았다.
뒤에 내시교관(內侍敎官)을 거쳐 장흥고주부(長興庫主簿)에 승진하고 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서흥현감·사복시판관(司僕寺判官)·원주판관·금산군수·남원부사를 지낸 뒤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러 여주에 돌아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