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69년 4월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에 세워진 다방 겸 소극장.
개설
다방겸용이었기 때문에 80석 밖에 되지 않는 소규모로서 무대도 한쪽 귀퉁이에 간단하게 만들어졌다. 따라서 낮에는 차를 팔고 밤에는 공연을 가졌는데 그것도 매일이 아닌 일주일에 몇 번씩 하는 방식을 취했다. 설립자가 프랑스로 유학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파리의 살롱형 소극장을 본뜬 것이었다.
기능과 역할
즉, 자유극장의 상임연출가라 할 김정옥(金正鈺) 역시 불문학 전공에다가 프랑스유학을 했기 때문에 전위극을 주로 공연하면서 신진극작가 발굴에 나섰고, 그 결과 오태석(吳泰錫)·윤대성(尹大星)·김영태(金榮泰)·장윤환(張潤煥) 등의 신작들이 자주 무대에 올려졌다.
서구의 전위극과 신작창작극을 조화시켜 나간 것이다. 그 중 우리 나라 연극사상 최초의 모노드라마라고 할 김동훈(金東勳)의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뚝이>(오태석 작·연출)는 일년 이상이라는, 당시로서는 장기 공연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또한 단막극 페스티벌과 대학극 페스티벌(서강대학교·한양대학교·건국대학교·동국대학교 등이 참가)을 개최했고, 명창초대 판소리감상회,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 등을 공연함으로써 근대연극사상 가장 소극장운동다운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문화의식이 없는 관(官)으로부터 여러 가지 수난을 겪었는데, 이른바 공연법과 보건법 등의 저촉에 따른, 잦은 휴관이 그것이었다. 물론 그때그때 연극인들의 진정으로 구제를 받기는 했지만 경영자측으로서는 여간 고충이 아니었다. 결국, 1975년 11월에 <이화부부>(金榮泰 작, 李允榮 연출) 공연을 끝으로 폐관되고 말았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극장사』(유민영, 한길사, 1982)
- 『자유극장 20년』(자유극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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