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떼아뜨르는 그 이름에서 보듯 살롱형 소극장이다. 극단 자유극장(自由劇場) 대표이며 여류디자이너인 이병복(李秉福)이 사비를 들여 개관한 이 극장은 프랑스의 전위극 작가인 이오네스코의 작품으로 개막을 장식했다.
다방겸용이었기 때문에 80석 밖에 되지 않는 소규모로서 무대도 한쪽 귀퉁이에 간단하게 만들어졌다. 따라서 낮에는 차를 팔고 밤에는 공연을 가졌는데 그것도 매일이 아닌 일주일에 몇 번씩 하는 방식을 취했다. 설립자가 프랑스로 유학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파리의 살롱형 소극장을 본뜬 것이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서울 명동 뒷골목에 위치한 까페떼아뜨르는 개관하자마자 연극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고, 본격 소극장운동의 기폭제가 될 만큼 상연목록 선정에서도 신선감을 주었다.
즉, 자유극장의 상임연출가라 할 김정옥(金正鈺) 역시 불문학 전공에다가 프랑스유학을 했기 때문에 전위극을 주로 공연하면서 신진극작가 발굴에 나섰고, 그 결과 오태석(吳泰錫)·윤대성(尹大星)·김영태(金榮泰)·장윤환(張潤煥) 등의 신작들이 자주 무대에 올려졌다.
서구의 전위극과 신작창작극을 조화시켜 나간 것이다. 그 중 우리 나라 연극사상 최초의 모노드라마라고 할 김동훈(金東勳)의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뚝이>(오태석 작·연출)는 일년 이상이라는, 당시로서는 장기 공연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또한 단막극 페스티벌과 대학극 페스티벌(서강대학교·한양대학교·건국대학교·동국대학교 등이 참가)을 개최했고, 명창초대 판소리감상회,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 등을 공연함으로써 근대연극사상 가장 소극장운동다운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문화의식이 없는 관(官)으로부터 여러 가지 수난을 겪었는데, 이른바 공연법과 보건법 등의 저촉에 따른, 잦은 휴관이 그것이었다. 물론 그때그때 연극인들의 진정으로 구제를 받기는 했지만 경영자측으로서는 여간 고충이 아니었다. 결국, 1975년 11월에 <이화부부>(金榮泰 작, 李允榮 연출) 공연을 끝으로 폐관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극장은 1950년대 말엽에 원각사(圓覺社)를 중심으로 잠시 벌어졌던 소극장운동을 계승하여 1970년대 연극운동의 새 지평을 연 소극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