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풀의 구별은 줄기의 계속되는 비대생장(肥大生長)으로 파악될 수 있다.
즉, 나무의 줄기는 땅 위로 계속 높게 자라며 그 굵기는 해마다 증대해 나가지만, 풀의 줄기는 일년이라는 한 계절 동안만 자랄 뿐이고 겨울을 지나는 동안 지상부는 죽고 만다.
나무와 풀 사이의 줄기 비대생장의 조직학적 차이를 살펴보면, 먼저 줄기나 가지 끝쪽의 정단분열조직세포(頂端分裂組織細胞)가 분열을 계속하고 뒤에 그 안에 전형성층(前形成層)을 만들고 이것이 유관속(維管束)으로 발달하게 되며, 유관속 안에는 형성층조직세포가 있어서 줄기의 안쪽으로 목부세포(木部細胞)를, 바깥쪽으로 사부세포(篩部細胞)를 만들어 나간다.
이와 같이 유관속 안의 형성층세포로 만들어진 목부를 제1차목부, 그리고 사부를 제1차사부라고 말한다. 이곳까지의 발육과정은 나무와 풀이 같으나, 나무의 경우는 유관속 안의 형성층이 속간형성층(束間形成層)으로 연결이 되어 고리모양[環狀]으로 된다.
즉, 동심원상(同心圓狀)으로 된 형성층이 분열을 계속하여 안쪽으로 제2차목부를, 바깥쪽으로는 제2차사부를 만들어 나간다.
나무가 몇 해 동안이라도 살아가는 한 이 제2차목부는 증가해 나가고 이것이 줄기의 비대생장으로 표현된다. 풀은 이와 같은 제2차목부와 제2차사부를 만들어 나가지 못한다.
나무는 소나무·상수리나무·전나무처럼 한 개의 줄기가 높게 자라는 교목(喬木, 또는 高木)과 무궁화·회양목·진달래·개나리처럼 땅 표면 부근으로부터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관목(灌木), 그리고 등·칡·머루·담쟁이덩굴처럼 줄기가 덩굴로 되는 만목(蔓木)으로 나누어진다. 또한, 겨울철에 잎이 모조리 떨어지는 것을 낙엽수종, 그렇지 않은 것을 상록수종이라고 한다.
소나무·비자나무·주목·전나무·향나무 등은 생식기관으로서의 배주(胚珠:밑씨)가 노출상태에 있기에 나자식물(裸子植物)이라 하고, 감나무·단풍나무·밤나무·떡갈나무·사시나무 등은 배주가 자방(子房)이라는 보호조직에 의하여 덮여 있기에 피자식물(被子植物)이라고 한다.
나자식물에 속하는 나무들은 대체로 잎이 좁고 가늘며 평행맥(平行脈)을 가지고 있어서 흔히 침엽수종(針葉樹種)으로 표현되며, 피자식물에 속하는 나무들은 대체로 잎이 넓고 망상맥(網狀脈)을 가지고 있기에 활엽수종(闊葉樹種, 또는 廣葉樹種)으로 표현되고 있다.
나자식물인 침엽수종의 목재는 주로 가도관세포(假導管細胞:헛물관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피자식물인 활엽수종의 목재는 주로 도관세포(導管細胞:물관세포)로 구성되어 있다는 차이점이 있으며, 이것이 목재의 성질과 쓰임새를 다르게 만들고 있다.
피자식물에 속하면서도 대나무류와 청미래덩굴류는 한 개의 떡잎[子葉]을 가지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 그래서 이들은 단자엽식물(單子葉植物)로 분류된다. 다른 피자식물의 나무열매는 두 개의 떡잎을 가지고 있어서 쌍자엽식물이라고 한다.
대나무류는 유관속의 형성층이 서로 연결되지 못하므로 제2차목부를 형성할 수 없으며, 따라서 줄기의 비대생장은 일년 안으로 끝나고 해에 따라 계속되는 자람은 없다.
그러나 줄기는 겨울에도 죽지 않고 오래 살아간다. 그래서 옛날 우리 선조들은 대나무류를 비목비초(非木非草)라 하여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니라고 표현하였다. 현재 식물학에서는 대나무류는 목본으로 취급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만 나는 특산수종으로는 구상나무·미선나무·새양버들·제주조릿대·검팽나무·댕강나무·흰괴불나무·섬백리향·정향나무·수수꽃다리·개나리·만리화·섬버들·덧나무·개느삼·이노리나무·섬벗나무·섬국수나무·금강인가목·좀고채목 등을 들 수 있다. 희귀수종으로는 망개나무·구상나무·누운잣나무·두메닥나무 등이 있다. 현재 우리 나라에 자생하고 있는 나무는 고유종이 약 620종, 변종 및 품종이 약 360종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 나라는 면적이 좁지만 다른 지역에 비교하여 다양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유럽과 북미주 등은 신생대에 들어와서 적어도 네 번의 빙하작용을 받아 많은 수종이 절멸하였지만, 우리 나라는 그러한 작용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풍부한 수종이 그대로 남을 수가 있었다.
북반구가 빙하작용을 받을 때 우리 나라도 한랭한 기후상태에 휩쓸려 들어가게 되었고, 그 때 추위에 견딜 수 있는 구상나무·누운잣나무·누운향나무·누운측백·분비나무·주목 같은 것은 더 낮은 곳에도 많이 분포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뒤 간빙기(間氷期)로 되면서 온도가 상승하게 되자 이들 수종은 높은 산 위쪽에만 분포를 보게 되었을 것이라는 이른바 한기잔존종(寒期殘存種)으로 믿어지고 있다.
우리 나라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르면서 수풀을 구성하는 수종에 차이가 있는데, 이것은 한랭지수(寒冷指數)와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상록활엽수림은 녹나무·후박나무·가시나무류·조록나무·호랑가시나무·사스레피나무·구실잣밤나무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랭지수 -5℃ 이상의 지역이 이곳에 해당되고 있다. 생육기간중의 높은 온도조건보다는 겨울철의 저온이 수종분포에 더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의 고산 및 고원지대는 상록침엽수림지대에 속하고, 가문비나무·종비나무·전나무·잣나무 등이 주된 구성수종이나 낙엽성인 이깔나무가 많다.
제주도의 낮은 곳, 남해안의 도서, 전라남도·경상남도의 해안선에 따른 좁은 지역의 상록활엽수림, 그리고 북한의 상록침엽수림과의 사이에 놓여 있는 대부분의 삼림은 낙엽활엽수림으로서, 참나무류·느릅나무류·서어나무류·단풍나무류·자작나무류·피나무류·호도나무류·물푸레나무류·때죽나무류 등이 자라고 있다.
위에 설명한 삼림식생대(森林植生帶)를 남쪽부터 난온대림(暖溫帶林)과 온대림, 그리고 아한대림(亞寒帶林)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삼림상태는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우리 민족은 삼국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몇몇 수종의 나무에 크게 의지하여 생을 영위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소나무류와 참나무류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는 땔감과 구황식품(救荒食品), 그리고 생활용재의 공급이라는 뜻에서 큰 구실을 하였다.
소나무는 조선재와 건축재, 그리고 관재(棺材)로서 소중하였고, 참나무류는 그 열매가 기년(飢年:흉년)을 넘기는 데 매우 소중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6년(1434)조에 “경상도진제경차관이 계를 올려 말하기를 구황식품으로 상수리나무 열매가 으뜸이고 소나무 껍질이 그 다음입니다······(慶尙道賑濟敬差官啓 救荒之物 橡實爲上 松皮次之……)”라는 기록이 있고, 세조 1년(1455)조에도 비슷한 내용의 기록이 있으며, 우리 나라의 도토리 식품가공법은 일본에까지 전수된 바 있다.
또한, 우리는 어느 민족보다도 나무에 얽힌 사연들이 많다. 담장에 찔레나무를 올리면 호상(虎傷)이 염려되고, 복숭아나무는 귀신이 무서워하기 때문에 집안에 심어놓으면 조상의 영혼을 쫓아버려 좋지 못하고, 자귀나무를 심어놓으면 부부간의 애정이 더해지고, 엄나무는 나쁜 귀신을 물리치며, 석류나무를 심으면 자손이 많다는 등 그 예가 많다.
부석사의 골담초, 경기도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는 삽목신화(揷木神話)인데, 다른 민족에서도 이러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사람이 죽어서 나무로 태어났다는 전설도 곳곳에 남아 있다. 이 밖에 나무가 시문(詩文)·그림 등을 통하여 우리 민족의 정서함양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특히, 소나무·대나무·매화나무·벽오동·버드나무·목백일홍 등은 시문이나 그림의 소재로 많이 등장되었던 나무이다.
한국인의 신화적 발상법과 자연신앙의 두 영역에 걸쳐서 원형으로서 문제될 수 있는 나무로는 신단수(神壇樹)와 소도(蘇塗)를 들 수 있다.
앞의 것은 자연수이고 뒤의 것은 인공으로 다듬은 대[竿]이지만, 각기 ‘신나무’·‘신대’라고 이름지어질 수 있는 공통성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 신나무인 신단수는 서낭나무의 원형으로, 소도는 후대의 신대(서낭대) 및 솟대의 원형으로 생각될 수 있다.
신단수는 첫째 산 위에 솟아 있는 나무이다. 둘째 하늘신이 그 아래로 내려선 나무, 곧 신내림의 나무이다. 셋째 그것을 중심으로 하거나, 혹은 그것을 에워서 신시(神市)가 열린 나무이다. 이들 신단수가 지닌 세 가지 속성은, 그것이 지닌 우주성(세계성)과 종교성 그리고 공동체성에 대하여 각기 말해주고 있다.
물론, 이 세 가지 특성은 따로따로 떼어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 셋이 하나로 어울려서 신단수의 상징성을 결정짓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성(세계성)이란 신단수가 ‘세계수’ 또는 ‘우주나무’임을 의미한다.
세계의 한가운데 솟아서 세계의 중심이면서, 동시에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기둥 구실을 하는 나무가 세계수이다. 세계수인 신단수가 솟아 있는 태백산은 세계산이라는 이름으로 호칭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성이란 그것을 타고 하늘의 신이 하늘과 땅 사이를 내왕하는 나무, 곧 신내림나무임을 의미한다. 이 신내림나무라는 관념은 신이 그곳에 내리기만 한 나무가 아니고, 내려서 깃들인 나무이기도 하다는 뜻의 신지핌나무라는 관념을 파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신령 그 자체로 믿어진 나무, 곧 신령나무라는 관념도 낳을 수 있다.
오늘날의 서낭나무신앙에는, 이같이 신내림나무·신지핌나무·신령나무 등의 관념이 공존해 있다고 생각된다. 서낭나무에 근접하는 일은 동티를 타게 될 부정으로 간주되며, 서낭나무를 훼손하는 일은 신체(神體)의 훼손과 마찬가지로 생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낭나무 그 자체가 마을의 신주(神主)로 간주되기도 하는 것이다.
신단수의 공동체성이란 그것이 특정한 공동체의 중심임을 의미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공간적 중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중심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공동체 구성의 공간적·정신적 구심력으로서 신단수가 기능을 다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신단수의 공동체성이 부분적으로 세계성과 겹치게 됨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세계성(우주성)은 자연과 관련된 것임에 비하여, 공동체성은 정치적·사회적 공동체 성립과 관련된 만큼, 강한 문화적 징표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세계성·종교성·공동체성 등 세 가지 징표로 신단수의 신화적 속성 또는 자연신앙적 속성이 결정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 민족이 나무에 부쳐서 형성한 신화적·자연신앙적인 원형이기도 한 것이다.
이같은 신단수의 원형성은 장헌 고구려고분벽화에 그려진 나무와 신라왕관에 ‘출(出)’자로 도형화되어 있는 나무, 그리고 후세의 서낭나무 등에 투영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와 같이, 신단수가 지닌 세 가지 속성에다가 다시 번영과 영생까지를 더하여 생각하게 되면, 한국인들이 나무에 부쳐서 형성하고 또 전승하여 온 신화와 자연신앙 양쪽에 걸친 복합적인 상징성이 잡혀지게 될 것이다.
한편, 소도에서 서낭대와 솟대에 이르는 신대의 상징성에도 세계성과 종교성, 그리고 공동체성을 겹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신대의 원형성은 신단수의 원형성과 크게 달라질 수 없다. 가령, 이 소도나 서낭대에도 세계기둥 및 우주기둥의 관념을 적용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소도에서 공동체 중심의 상징성을 보아내는 일은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신대의 경우는 신내림대라는 상징성이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되면서, 한국인의 접신체험(接神體驗)을 위한 핵심적 매개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 점에서 우리들은 신대가 서낭나무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특징적 개성을 지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