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불상은 높이가 5m가 넘으며 신체와 광배(光背), 대좌가 모두 한 돌로 이루어져 있는 고려시대 거대 불상이다.
머리는 소라모양의 나선형 머리카락이 표현되어 있지 않은 소발(素髮)이다. 얼굴은 방형에 가깝고 코와 입이 두툼하게 표현되어 있다. 불상은 위로 치켜 올라간 길쭉한 눈과 삼도가 깊게 그려진 굵은 목 등에 의해 강건한 인상을 풍긴다. 불상의 수인은 시무외인(施無畏印)·여원인(與願印) 형태의 통인(通印)이나 왼손이 아래를 향하고 오른손이 위를 향하는 일반적인 통인과는 반대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몸에는 양 어깨를 모두 덮고 발밑까지 흘러내리는 통견(通肩)의 법의를 입었다. 물결모양의 옷 주름이 가슴부터 발목 위에까지 흘러내리고 발목 부근에는 수직선으로 옷 주름을 표현하였다. 발은 끝이 뭉툭하고 발등이 경사졌으며 신체에 비해 작게 만들어졌다. 불상의 신체는 높이에 비해 폭이 넓게 표현되어 있어 괴량감을 느끼게 한다. 규칙적인 물결모양의 옷주름과 발목 부근의 수직선 표현, 당당한 신체 모습 등은 고려 초 경기·충청 지방에 건립된 불상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불상의 광배는 배 모양의 주형거신광배(舟形擧身光背)이다. 광배는 두 줄의 선으로 머리광배와 몸 광배를 구분하여 나타냈다. 머리 광배의 중심부는 연화문으로 장식하였으며 연화문 밖에는 운문(雲文)을 조각하였다. 몸 광배에는 두 줄의 선 안쪽에 운문이 장식되었다. 대좌는 타원형의 원기둥 형태이며 대좌 장식은 없다. 대좌의 정면은 잘 다듬어져 있어 불상을 만든 유래를 적은 조상기(造像記)가 적혀 있었을 법하나 아무런 장식이나 명문(銘文) 등은 조각되어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고려시대에는 기념비적인 불상이 한 지역에 세워지면 주변지역에서 후대에 이를 모방한 불상이 제작되었다. 나주 철천리 석조여래입상의 경우도 주변 지역에서 이를 모방한 불상이 만들어졌다. 인근에 있는 나주 만봉리 석조여래입상이 대표적이며 보성 반석리 석불좌상의 경우도 철천리 석조여래입상의 상호와 두광 표현을 모방했음을 알 수 있다.
나주 철천리 석조여래입상은 5m가 넘는 초대형 불상이고 후대에 이를 모방하여 다른 불상들이 조성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나주와 그 주변지역에서 매우 중요하게 숭배되었던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신흥 고려의 기운을 타고 각 지방에서 대대적으로 제작되었던 일련의 거불 조각 가운데 하나로 생각되며 그 조성 시기는 고려 초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