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풍(金善豐)이 소장하고 있다. 작자는 1855년(철종 6)에 강원도 명주군(지금의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리 호벌가(豪閥家)의 선전관댁(宣傳官宅)에서 출생하여, 명주군 구정면 여찬리의 교관댁(敎官宅)으로 출가한 여인이다.
먼저 작품의 가사를 싣고, 그 다음에 발사(跋辭)를 첨가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전체가 약 3,000여구에 해당하는 장편이며, 음수율에서는 4·4조가 주축이지만, 3·4조, 4·3조, 3·3조 등등의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자수로 보면 22,894자이고, 가사 끝에 나온 발사까지를 넣고 계산하면 23,456자이다.
강원도 명주군 여찬리로부터 양양군 낙산사까지의 21일, 290리의 노정과, 노정을 통하여 보고 느낀 것 등의 3단으로 나뉘어 있다.
제1단 서사(序辭)는 여행의 동기와 출발로 되어 있다. 여필종부로 사회적·가정적으로 자유롭게 살지 못하였던 당시였지만, 비교적 좋은 가문의 노령의 아낙이 가족의 염려를 뒤로 하고 낙산사로 유람을 떠난다.
제2단 본사(本辭)는 여찬리를 출발하여 낙산사에 이르는 노정과 그 노정에서 보고 느낀 것으로 되어 있다. 노정은 남성다리로부터 오죽헌·경포대·명암정·쌍한정·교향리·호매교·관정평·독송정 등등을 거쳐 낙산사에 이르는 과정이다. 이 노정에 포함된 산수의 명소들은 물론이고, 다리의 명칭이 소상히 적혀 있다.
또한 안동댁 임존우의 딸에게 들은, 산신의 태몽으로 아들을 보게 된 설화도 삽입되어 있다. 동시에 향토민들의 융숭한 대접, 당시의 풍물과 구수한 인심, 효열비각을 통하여 교훈하는 모습, 그리고 일본 순사의 횡포와 학정의 실태도 묘사되어 있다.
제3단 결사(結辭)는 낙산사로부터 돌아오는 과정과 집안 식구와의 해후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은 작품성이 뛰어나지는 않으나 작자의 성격과 인생관이 소박하고 진솔하게 잘 표현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두어라’·‘긋처라’ 등의 문장투어(文章套語)를 본사에 넣어, 시조의 종장 제1구의 감탄사나 탄사의 기능을 하게 한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여류시가 중에서 가장 긴 장편으로, 길이 면에서 최장편의 양반가사로 알려진 김인겸(金仁謙)의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에 비견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