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숙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함경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숙부(淑夫)
인물/전통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491년(성종 22)
  • 사망 연도1553년(명종 8)
  • 본관함열(咸悅)
  • 주요 관직함경도관찰사|동지중추부사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한충희 (계명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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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함경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함열(咸悅). 자는 숙부(淑夫). 할아버지는 남순(南順)이고, 아버지는 강원도관찰사 남찬(南璨)이며, 어머니는 신자승(申自繩)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33년(중종 28)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박사에 보임되었다가 승문원도제조가 무단으로 보임시켰다는 대간의 논란을 받고 승문원에서 나와야만 하였다.

1536년 홍문관부정자에 제수되고, 이후 지평을 역임하였다. 1544년 안산군수(安山郡守)로 재직 중 청렴근면하고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는 경기도관찰사 홍섬(洪暹)의 장계에 따라 가자되었다. 1547년(명종 2) 승정원좌부승지로 발탁되고, 같은 해 진위사로 임명되었다가 신병으로 교체되었으며, 곧 상호군에 제수되었다.

1548년 황해도관찰사, 이듬해 해주교생(海州校生) 안세복(安世福) 등이 선정을 베풀었으니 계속 근무하게 해달라는 상소를 올려 한 계(階)가 가자되면서 유임하도록 되었다. 그러나 유생의 상소가 실정과는 다르다는 것이 판명되면서 가자가 취소되고 상호군에 좌천되었다가 같은 해 전라도관찰사로 임명되었다.

1551년 한성부우윤을 거쳐 함경도관찰사가 되었는데, 이 때 탐학이 심하다는 대간의 탄핵을 받고 다시 동지중추부사에 좌천되었다. 자질이 용렬하고 고집이 세고 학식이 얕아 명리를 탐취하였지만, 직무에는 근면하여 세인으로부터는 능력있는 관리라고 인식되었다. 특히 활쏘기에 능하였다.

참고문헌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한국인의 족보』(일신각,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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