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창의록 ()

남문창의록 / 임진사략
남문창의록 / 임진사략
유교
문헌
조선시대 문신 김경수가 장성현 남문에서 창의한 사실을 기록한 의병록.
정의
조선시대 문신 김경수가 장성현 남문에서 창의한 사실을 기록한 의병록.
개설

1592년 임진왜란 때 전좌랑(前佐郎)김경수(金景壽)가 종제인 전판관 김신남(金信男)과 두 아들 김극후(金克厚)·김극순(金克純)을 데리고 장성현남문(長城縣南門)에서 창의(倡義)한 사실을 기록한 책이다.

편찬/발간 경위

저자 미상. 1799년(정조 23)김인순(金麟淳)에 의해 편집·간행되었다.

서지적 사항

2권 1책. 목활자본. 규장각 도서에 있다.

내용

권1은 임진사략(壬辰史略)·동궁유의병장(東宮諭義兵將)·유전라도사민(諭全羅道士民)·반칙교서(頒勅敎書)·반첩교서(頒捷敎書)·남문일기(南門日記)·격문(檄文)·상도체찰사정상국서(上都體察使鄭相國書)·헌곡포전(獻穀布箋)·공례장(公禮狀)·통문(通文)·창의비명(倡義碑銘)·거의제원명첩(擧義諸員名帖), 권2는 거의제원사실(擧義諸員事實) 각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진사략」은 임진왜란에 대한 자초지종을 서술한 것으로, 대가(大駕)가 평양으로 몽진한 뒤에 부사 김천일(金千鎰)이 창의해 나주로부터 수원에 진주한 것, 전부사 고경명(高敬命)이 담양에서 창의해 금산에서 패배한 것, 김경수가 김홍우(金弘宇)·기효증(奇孝曾)·이수일(李守一) 등과 장성남문에서 창의하여 순창현감 김제민(金齊閔)을 의병장으로 삼아 직산읍(稷山邑)에서 적을 무찌른 것을 기록하여 놓았다.

「동궁유의병장수서」는 동궁이 의병장에게 보낸 유지로, 서울을 수복하려는 의병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국가의 존망이 의병들의 손에 달려 있으니 힘써 싸워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유전라도사민교서」는 전라도 사민들에게 사기를 진작시킨 유지와, 오직 호남지역이 안전함은 전라도 사민들의 힘이 크기 때문이니 마땅히 각별하게 임전태세를 취할 것을 당부하고, 또한 고경명을 공조참의로 제수해 초토사를 삼고 김천일을 장례원판결사로 제수해 창의사를 삼고, 박광옥(朴光玉) 등 여러 사람에게 각각 벼슬을 내린 기록이다.

「남문일기」는 남문의거에 대한 일기이다. 1592년 7월 18일 의거 당일부터 1597년 8월 25일까지 김홍우 등이 소사(素沙)에서 적을 크게 무찔렀고, 27일 김신남이 또한 많은 적을 섬멸한 것과 9월 10일 고향으로 돌아왔음을 기록하여 놓았다.

「상도체찰사정상국서」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정철(鄭澈)에게 보낸 것으로, 군량이 부족해 병사들이 전의를 상실했음을 지적하고, 하루 속히 해결책을 강구할 것을 촉구하였다.

「통문」은 명나라 원병의 출정에 관해 언급한 것이며, 「창의제현사실」은 의병장 김제민을 비롯하여 21인의 의병장들의 명단이 기재되어 있어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역사적 자료가 된다.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이순두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