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소문

  • 예술·체육
  • 유적
  • 조선 전기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었던 조선전기 남산 봉수대의 동쪽 문(門). 성문.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장희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었던 조선전기 남산 봉수대의 동쪽 문(門). 성문.

내용

흥인지문(興仁之門 : 東大門)과 숭례문(崇禮門 : 南大門) 사이에 있는 광희문(속칭 水口門)을 남소문이라 오인한 예도 있으나 별도로 남소문이 있었다.

남소문을 설치한 것은 1457년(세조 3)이며, 새로 이 문을 설치하게 된 것은 한강 나루를 통하여 남쪽으로 가려면 광희문을 통과하게 되는데, 그것은 거리가 멀고 불편하므로 한강 나루터를 도성에서 곧바로 통과하여 나갈 수 있는 문을 하나 새로 설치하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가 있었고, 세조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새로 이 문을 설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소문은 설치된 지 12년만인 1469년(예종 1)에 임원준(任元濬) 등의 건의에 의하여 폐지되는데, 그 이유는 실용에 있어서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음양가(陰陽家)에서 손방(巽方 : 正東南方)을 꺼려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문을 설치한 뒤에 의경세자(懿敬世子 : 世祖의 世子)가 사망하여 음양가의 주장이 맞았다는 것이었다. 그 뒤 명종·숙종 때에 다시 남소문을 개통하자는 의견이 다시 제기되었으나 풍수금기설(風水禁忌說)에 의한 반대론에 부딪혀 끝내 개통을 보지 못하였다. 남소문이 언제 없어졌는지 확실한 시기는 알 수 없으며, 지금은 그 흔적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

참고문헌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예종실록(睿宗實錄)』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남소문(南小門)과 개폐문제(開閉問題)」(이병도, 『향토서울』1,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5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