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소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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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에 있었던 조선전기 남산 봉수대의 동쪽 문(門). 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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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었던 조선전기 남산 봉수대의 동쪽 문(門). 성문.
내용

흥인지문(興仁之門 : 東大門)과 숭례문(崇禮門 : 南大門) 사이에 있는 광희문(속칭 水口門)을 남소문이라 오인한 예도 있으나 별도로 남소문이 있었다.

남소문을 설치한 것은 1457년(세조 3)이며, 새로 이 문을 설치하게 된 것은 한강 나루를 통하여 남쪽으로 가려면 광희문을 통과하게 되는데, 그것은 거리가 멀고 불편하므로 한강 나루터를 도성에서 곧바로 통과하여 나갈 수 있는 문을 하나 새로 설치하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가 있었고, 세조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새로 이 문을 설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소문은 설치된 지 12년만인 1469년(예종 1)에 임원준(任元濬) 등의 건의에 의하여 폐지되는데, 그 이유는 실용에 있어서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음양가(陰陽家)에서 손방(巽方 : 正東南方)을 꺼려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문을 설치한 뒤에 의경세자(懿敬世子 : 世祖의 世子)가 사망하여 음양가의 주장이 맞았다는 것이었다. 그 뒤 명종·숙종 때에 다시 남소문을 개통하자는 의견이 다시 제기되었으나 풍수금기설(風水禁忌說)에 의한 반대론에 부딪혀 끝내 개통을 보지 못하였다. 남소문이 언제 없어졌는지 확실한 시기는 알 수 없으며, 지금은 그 흔적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

참고문헌

『세조실록(世祖實錄)』
『예종실록(睿宗實錄)』
『명종실록(明宗實錄)』
『숙종실록(肅宗實錄)』
「남소문(南小門)과 개폐문제(開閉問題)」(이병도, 『향토서울』1,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57)
집필자
이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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