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4년(태조 3) 무렵에 서울에 사직단(社稷壇)이 세워짐에따라 전국의 주(州)ㆍ부(府)ㆍ군(郡)ㆍ현(縣)에도 사직단을 세우게 되었는데, 남원 사직단도 이 시기를 전후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992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608평 정도되는 남원 사직단지(社稷壇址)는 사방이 담장으로 둘러져 있고, 담장내에 사직단(社稷壇)ㆍ진설단(陳設壇)ㆍ사당(祠堂)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중 사직단의 면적은 17.4평으로 높이는 1.3m 정도이다. 사직(社稷)은 토지신[社]과 곡물신[稷]을 일컫는 것으로서 땅에 씨를 뿌려 식량이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토지와 곡식은 나라살림의 원천이 되므로 사직은 국가를 상징하며 종묘사직(宗廟社稷)은 토지와 곡식 없이는 국가나 종묘가 존립할 수 없음을 뜻한다. 본래 사직은 중국에서 새로이 나라를 세우면 천자나 제후가 단을 세우고 맨먼저 토지신과 곡물신에게 제사를 드렸던 것에서 전래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해마다 정월이 되면 고을 원님들이 사직단에 나가 토지신과 곡물신에게 친히 제사를 드려 그 해의 풍년과 고장의 평안을 기원하였다. 1910년 일제 침략으로 전국의 사직단이 거의 파괴되었으나 남원 사직단은 남원유림들에 의해 유지 보존되어오고 있다.
일제의 간섭이 극심하였던 때에는 기직단제(祈稷壇祭)라 고쳐 위장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계(禊)를 만들고 위토답(位土沓)을 만드는 등으로 봄ㆍ가을에 1회씩 연 2회 사직단제를 지내고 있다. 이 남원 사직단은 조선 초기에 세워져 현재까지 전해지는 제사공간으로서 이 방면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