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보안면 민가에 있는 조선후기 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2기의 장승. 석장승·선인(仙人)계 법수(法首)장승.
내용
형태는 일반적으로 분묘에 세우는 장군석과 유사하나 각각의 석상은 복부(腹部)에 ‘王儉’(왕검), ‘桓雄’(환웅)이라 음각되어 있다. 왕검상은 높이 182㎝, 몸통둘레 158㎝ 정도로서 머리에 두건을 쓴 형상이며 귀가 얼굴의 크기에 비하여 큰 편인데 오른쪽 귀와 얼굴은 마모가 심하다.
앞면 복부에 ‘王儉’, 뒷면에 ‘長白山’(장백산)이라 새겨져 있다. 환웅상은 높이 172㎝ 몸통둘레 140㎝이며 왕검상보다 크기는 약간 작으나 형태는 유사하다. 앞면 복부에 ‘桓雄’, 뒷면에 ‘九龍淵’(구룡연)이라 새겨져 있다.
이 석장승은 원래 월천리로부터 서북쪽으로 3㎞ 떨어진 거북메의 개천가에 놓여있어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녔는데, 밟고 건널 때마다 당시 이 지역의 거부(巨富)였던 정태인의 시아버지인 허방한이 아팠다고 한다.
그러던 중 허방한의 꿈에 석상신(石像神)이 나타나 일으켜 세워달라고 하여 1920년경 자신의 집에 옮겨다 세우고 명절이면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이후 오랫동안 제사가 없었으나 단군신앙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1985년부터 다시 이 장승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 장승은 우리 나라 단군신화(檀君神話)에 나타나는 환웅과 단군 두사람을 법수(法首)장승으로 모신 수호신으로 우리나라 장승의 몇가지 유형중에서도 선인계(仙人系) 법수장승의 매우 희귀한 경우로서 민속학계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참고문헌
- 『전북문화재대관(全北文化財大觀)-도지정편(상)-』(전라북도, 1997)
- 『문화재지(文化財誌)』(전라북도,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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