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1995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민속자료(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7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왕검상(王儉像)과 환웅상(桓雄像) 2기가 월천리 개인집 정원에 세워져 있다.
형태는 일반적으로 분묘에 세우는 장군석과 유사하나 각각의 석상은 복부(腹部)에 ‘王儉’(왕검), ‘桓雄’(환웅)이라 음각되어 있다. 왕검상은 높이 182㎝, 몸통둘레 158㎝ 정도로서 머리에 두건을 쓴 형상이며 귀가 얼굴의 크기에 비하여 큰 편인데 오른쪽 귀와 얼굴은 마모가 심하다.
앞면 복부에 ‘王儉’, 뒷면에 ‘長白山’(장백산)이라 새겨져 있다. 환웅상은 높이 172㎝ 몸통둘레 140㎝이며 왕검상보다 크기는 약간 작으나 형태는 유사하다. 앞면 복부에 ‘桓雄’, 뒷면에 ‘九龍淵’(구룡연)이라 새겨져 있다.
이 석장승은 원래 월천리로부터 서북쪽으로 3㎞ 떨어진 거북메의 개천가에 놓여있어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녔는데, 밟고 건널 때마다 당시 이 지역의 거부(巨富)였던 정태인의 시아버지인 허방한이 아팠다고 한다.
그러던 중 허방한의 꿈에 석상신(石像神)이 나타나 일으켜 세워달라고 하여 1920년경 자신의 집에 옮겨다 세우고 명절이면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이후 오랫동안 제사가 없었으나 단군신앙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1985년부터 다시 이 장승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 장승은 우리 나라 단군신화(檀君神話)에 나타나는 환웅과 단군 두사람을 법수(法首)장승으로 모신 수호신으로 우리나라 장승의 몇가지 유형중에서도 선인계(仙人系) 법수장승의 매우 희귀한 경우로서 민속학계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