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각 ()

남정각
남정각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의열단에서 활동하며 일제 기관 파괴를 계획하다 발각되어 체포된 독립운동가.
이칭
오산(午山)
이칭
남영득(南寧得), 남영득(南英得)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7년(고종 34)
사망 연도
1967년
출생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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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의열단에서 활동하며 일제 기관 파괴를 계획하다 발각되어 체포된 독립운동가.
개설

일명 남영득(南寧得, 南英得), 호는 오산(午山). 서울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서울기독교청년회 공업과를 중퇴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수원 등지에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고, 1920년 3월 북경(北京)으로 망명, 중국청년회 어학과에서 수학하다가 중퇴하고 장춘(長春)·톈진[天津]·상해 등지를 순력하였다.

장춘에서 의열단장 김원봉(金元鳳)을 만난 뒤 1922년 6월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1923년 의열단에서는 국내의 일제기관 파괴와 요인을 암살하고자, 서울에 있던 김한(金翰)과 김원봉 사이를 오가면서 폭탄의 수입준비를 진행하던 중 김한이 종로경찰서에 검거되어 폭탄을 구하지 못하였다.

그해 3월 1일 톈진으로 가 김원봉으로부터 폭탄반입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가 비용을 구하지 못하였기 때문임을 알고 실행비용을 국내에서 보충하기 위해서 동지 권정필(權正弼)·유시태(柳時泰)·유병하(柳秉夏)와 협의한 뒤 권총을 휴대, 2월 21일부터 3회에 걸쳐 서울 내자동 이인희(李麟熙) 집에 찾아갔다가 잠복한 경찰에 붙잡혔다.

그 해 8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8년형을 받고 복역하였다. 1929년 출감하자, 다시 톈진으로 망명하여 톈진교민회를 조직,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아 귀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자료집』 1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한국독립운동사』 4(국사편찬위원회, 1968)
『약산과 의열단』(박태원, 백양당, 1947)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경찰부,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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